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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고 모두 같은 '도'는 아니다…40년 스타인웨이 조율 장인이 리움에 왔다

삼성문화재단과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가 주최한 ‘국내 피아노 조율사 양성 심화과정’의 해외 강사 루츠 라이베홀츠 클라이버하우스 쾨페니크 대표. 사진 제공=삼성문화재단




삼성문화재단과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가 주최한 ‘국내 피아노 조율사 양성 심화 과정’의 해외 강사 루츠 라이베홀츠 클라이버하우스 쾨페니크 대표. 사진 제공=삼성문화재단


“이렇게 바늘로 깊이 해머를 찌르면 펠트가 부서지거나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3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강당에서 열린 ‘국내 피아노 조율사 양성 심화 과정’에서 루츠 라이베홀츠(79) 독일 베를린 클라비어하우스 쾨페니크 대표는 직접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서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조율을 시연했다. 작은 소리조차 허용되지 않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사전 선발된 20명의 국내 조율사가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언뜻 비슷한 소리인 것 같지만, 라이베홀츠가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미세하게 소리가 바뀌었다.

4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심화 과정에 해외 강사로 초청된 라이베홀츠는 독일 스타인웨이사에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몸담은 명실상부한 ‘장인(Meister)’이다. 그는 세계적 피아노 콩쿠르인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도 1980년부터 20년간 콩쿠르 무대에 오르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관리할 정도로 신임받는 실력자다.

라이베홀츠는 1959년 스타인웨이에 입사해 2002년 시니어 테크니션으로 정년 퇴임했다. 그에게는 ‘1959년 12월 11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진 손목시계가 있다. 스타인웨이 사가 지난 공로를 기념하며 그에게 선물한 것이다. 테크니션으로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한 그는 이후에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조율 교육을 이어나가고 있다. 1998년과 2003년에도 한국을 방문해 전국의 공연장 피아노를 순회하며 조율한 적이 있다고 했다.

피아니스트가 손가락으로 음악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면, 조율사는 그 밑바탕을 정밀하게 설계하는 인물이다. 명징한 조율이 없다면 아름다운 음악도 있을 수 없다.

조율은 크게 튜닝 핀을 돌려 음을 맞추는 ‘조율’과 건반의 터치감을 맞추는 ‘조정’, 음색을 맞추는 ‘정음’ 과정으로 이뤄진다. 라이베홀츠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율의 단계는 조정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음색을 바꾸는 ‘정음(Voicing)’ 작업도 조정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서 “좋은 조율사는 피아노를 직접 연주해보면서 액션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있다. 또 피아니스트의 요구대로 음을 정확히 바꾸고 돌려놓는 것이 조율사의 덕목”이라고 말했다.



조율 과정은 단순히 음을 듣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완벽한 음을 독일어로 ‘클랑(Klang)’이라고 하는데, 이를 만들기 위한 훈련을 거듭해 나간다. 라이베홀츠는 “음 사이 간격을 듣기 위해 완벽히 훈련하려면 1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면서 “일전에 동료가 5분, 10분씩 시간을 늘려가며 훈련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전원 버튼이 켜지듯이 작업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2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강당에서 열린 ‘피아노 조율사 양성 심화 과정’에서 해외 강사로 초빙된 루츠 라이베홀츠 독일 베를린 클라비어하우스 쾨페니크 대표가 국내 조율사 앞에서 강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문화재단


피아노 제조사 등에 속해 팀을 이루며 오랜 기간 교육을 받는 독일과 달리 국내의 피아노 조율사는 사설 학원에서 6개월~1년 정도 과정을 거치면서 기초를 쌓는다. 이후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가 주관하는 피아노 조율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프리랜서로 일한다. 세계적 수준의 전문성을 키우기에는 아직 열악한 환경이다.

삼성문화재단이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와 함께 2017년부터 해외 파견, 기술 세미나·심화 과정 등 피아노 조율사 대상으로 다양한 조율 기술 교육을 꾸준히 제공해온 것은 국내 우수 조율 인프라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해외 유명 마이스터를 초빙해 심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눈앞에서 듣는 마이스터의 강의를 통해 우수한 선진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서다.

기술적인 교육도 빼놓지 않았다. 라이베홀츠는 지난 8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재개된 ‘국내 기술 세미나’에도 참석해 기본 이론과 피아노 조율사의 도덕적인 자세에 대한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교육생들도 20년 경력을 넘긴 ‘베테랑’ 조율사가 태반이다. 그러나 교육생들은 직접 교육을 받으면서 명장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라이베홀츠의 “원칙을 갖고 가라, 정도(正道)를 밟아라”라는 조언 덕분이다. 대구에서 35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이재헌 조율사(54)는 이번 교육에 대해 “피아노는 세월이 녹아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세월을 따라잡는 게 어려운데 교육을 통해 장인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어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31년 경력의 차갑준 조율사(55)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20명 안에 들어 기분이 좋다. 기초 코스부터 밟으면서 교육받으니 기술이 단계적으로 완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라이베홀츠는 “가깝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완벽한 분위기 속에 지도 과정을 진행했다”면서 “실력 있는 조율사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열의와 여유를 가지고 조율에 임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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