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곧 한 달을 맞는다.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대 사망자가 나온 하마스의 공격에 이스라엘은 ‘피의 보복’을 공언했고 그 약속은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공습과 지상전으로 현실이 된 모습이다. 미국의 개입과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전황은 확대일로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 각국의 테러 위험 고조 등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번 사태의 향방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미 전방위 외교에도 꼬여가는 전쟁=4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전날 이스라엘 도착을 시작으로 개전 이후 두 번째 중동 순방에 돌입했다. 지난달 12~18일 순방 이후 3주 만이다. 당시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이스라엘을 찾으며 우방인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표명했지만 3주 사이 이스라엘의 민간인 공습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한 탓에 이번 순방에서는 인도적 교전 일시 중단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관계국 간 이견만 확인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블링컨 장관은 전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교전 일시 중단을 압박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회동 직후 성명을 내고 “인질 석방이 없는 일시적 휴전안은 거부한다”고 ‘퇴짜’를 놓았다. 다음 날 방문한 요르단 암만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외무장관들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이 ‘전면 휴전’을 요구하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결국 미국의 개입은 중동 지역에 항공모함 등의 전략자산을 배치하고 ‘하마스의 뒷배’인 이란에 개입 자제를 촉구함으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그치고 있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소속 에런 데이비드 밀러 선임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지렛대의 한계를 발견하고 있다”며 “하마스의 야만적 침공과 이를 파괴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보복 사이에서 미국이 제시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하마스 침공을 막지 못한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규탄 여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교전 중단을 강제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한 달 새 생지옥 된 가자…국제사회 비판=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는 생지옥이 됐다. 면적 365㎢로 서울의 60% 정도인 가자지구는 240만 명의 인구가 이스라엘의 극심한 통제를 받으며 살고 있어 이전에도 ‘지붕 없는 감옥’으로 불리던 곳이다. 연일 가자지구를 공습하던 이스라엘은 민간인에 ‘남쪽 대피’를 권고한 후 지난달 28일을 기점으로 사실상의 지상전을 시작한 상태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개전 이후 4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최소 9488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숨졌다. 이 중 어린이 사망자는 약 3900명으로 59%에 달한다고 알자지라방송은 전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를 중심으로 지상전을 전개하며 자발리아 난민촌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일까지 사흘 사이 2,000파운드(약 907㎏)짜리 항공폭탄 최소 두 발을 자발리아 난민촌에 투하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스라엘이 병원·구급차까지 공격하자 유엔 인권사무소는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불균형적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전쟁 발발 전 해빙 무드에 들어섰던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대립각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가자지구 내 알아흘리아랍병원이 폭격을 받아 50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후 최근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이 진전되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해 아랍 국가들의 대(對)이스라엘 적대감은 한층 깊어졌다.
◇아랍 넘어 문화 전쟁으로 번지는 갈등=중동 갈등은 아랍권을 넘어 전 세계를 친(親)이스라엘과 친팔레스타인으로 분열시키는 ‘문화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난민촌 공습이 잇따르자 유럽 주요 국가에서 휴전을 촉구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프랑스와 독일 전역에 각각 2만 6000여 명, 1만 9000여 명의 시위대가 동원됐다. 미국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유대인·이슬람 혐오주의 확산에 경계령 역시 내려졌다. 전쟁 발발 후 프랑스와 영국에서 확인된 반유대주의 범죄는 각각 819건, 805건에 달한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 이슬람 혐오 범죄 역시 774만 건에 달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 세계적으로 반(反)유대주의·반이스라엘 선동이 늘어나고 있다”며 자국민들에게 해외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두 개 전쟁 동시에 세계 경제 살얼음=중동 분쟁의 격화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두 개의 전쟁을 한꺼번에 겪게 된 세계 경제는 확전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신(新)중동전쟁 발발에 따른 오일쇼크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모두 원유 생산지는 아니지만 전쟁이 주변 국가로 번질 가능성이 유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특히 이란이 전쟁에 개입할 경우 세계 석유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은행(WB)은 세계 석유 공급량이 하루 600만~800만 배럴 줄어드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며 이 경우 유가가 배럴당 140~157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대 25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전 세계 인플레이션 기조가 겨우 진정되는 국면에서 유가 상승은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 WB의 인더미트 길 수석연구원은 “두 개의 에너지 충격(중동·우크라이나 전쟁)을 동시에 겪는 것은 처음”이라며 “세계 경제는 가장 취약한 시점에 있다”고 말했다.
한편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이끄는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 이후 처음으로 공개 연설에 나서 “모든 선택지가 고려 대상”이라며 “이스라엘과의 전면전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이 먼저 시작한 만큼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끝낼 수 있는 것도 미국”이라며 이스라엘에 대한 통제를 요구해 확전에 선을 긋는 자세를 취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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