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뇌물 혐의를 받는 현직 감사원 간부에 대해 청구한 구속 영장이 9일 기각됐다. 이로써 공수처는 출범 후 2년이 되도록 단 한 건의 구속 영장도 발부시키지 못한 불명예를 얻게 됐다. 차기 공수처장 인선이 한창인 가운데 ‘구원 투수’로 등판할 인물이 나타날지 관심이 쏠린다.
이날 법원은 10억원대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감사원 3급 간부 김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피의자가 대다수의 공사 계약에 개입했음을 인정할 직접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재까지 제출된 증거에 대해서는 반대 신문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뇌물 액수의 산정에 있어 사실 내지 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고 피의자에게 반박자료 제출을 위한 충분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수처가 제기한 논리에 법리적 쟁점이 있는데다가 혐의 자체도 소명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피의자 김씨는 건설업체 관계자와 업무 시간에 동남아 여행을 간 사실이 내부 감사에서 적발돼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이력이 있는 데다가 현재 직위 해제된 상태인 ‘문제적 인물’로 알려졌다. 공수처 내부에서도 혐의 소명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봤지만 영장 기각으로 침체된 분위기다.
공수처가 피의자 구속에 실패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출범 후 승률 0%의 ‘4전 4패’를 기록한 초유의 상황이다. 2021년 1월 야침차게 시작한 공수처는 그 해 10월과 12월 ‘고발사주’ 의혹을 받던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현 대구고검 차장검사)에 대해 두 차례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가 모두 기각 당하며 망신살을 뻗쳤다. 올해 수억원대 금품 수수 혐의를 받는 현직 경찰 고위 간부에 대한 범죄 혐의를 처음으로 자체 인지 사건으로 입건하며 관심을 샀지만 8월 세번째 영장을 기각 당했다. 모두 범죄 혐의조차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고질적인 수사력 문제에는 처장을 비롯한 공수처 고위 간부들의 수사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않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진욱 처장과 여운국 차장은 수사 경험이 없는 판사 출신이다. 공수처는 뒤늦게 검찰에 러브콜을 보내 지난달 부로 부장검사 3명을 전원 ‘특수통’ 검찰 출신으로 채웠지만 모두 2013년~2015년께 퇴직해 변호사로 활동한 인물들로 최근 급변한 수사 상황과 범죄 기술에 대응하긴 역부족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김진욱 처장에 이어 공수처호를 새로 이끌 차기 처장에 관심 쏠리는 이유다. 8일 첫 회의를 시작한 후보추천위원회는 ‘수사 역량’을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차기 총장을 선출하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초대 처장도 구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처럼 공수처가 기틀도, 수사력도, 사기도 없는 상황에서 누가 선뜻 나서겠나”고 우려했다. 게다가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계 경력이 15년 이상이어야 하고, 검사는 퇴직해서 3년이 지나야 한다는 제한도 있다. 공수처 자체가 ‘제2의 검찰’이 돼선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72년간 지속된 검찰의 기소독점에 제동을 걸고 새로운 사정기관이 되겠다며 탄생한 기관이므로 그 의미가 퇴색돼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공수처장 인선이 뒤로 밀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법부 양대 수장인 대법원장이 지난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 후 두 달째 공석이며 헌법재판소장도 오는 10일 유남석 소장 임기 만료 후 공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공수처장 인선은 후순위로 미루지 않겠냐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안 그래도 갈피를 못잡고 있는 공수처가 아예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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