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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음껏 달려도 돼" 딱딱하게 굳은 폐, 새 숨길 불어넣는 의사 [메디컬 인사이드]

■ 이진구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

세브란스, 1996년 국내 첫 성공…단일기관 유일 500례

호흡기내과·감염내과·혈액내과·재활의학과 등 유기적 협업

폐이식수술 후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꾸준히 할수록 폐기능이 빠르게 회복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미지투데이




“그새 몸이 엄청 좋아졌는데? 요즘 운동하는 구나.”

“에이, 러닝을 시작한 지 이제 한달차인데 벌써 티가 난다고요? 아직은 전력질주할 엄두가 안나서 조금씩 속도를 올려보고 있어요. ”

“내가 이래뵈도 전문가인데 척보면 알지. 시간당 킬로(km) 수 얼마 정도 나와? 지금 컨디션이면 좀 더 숨차게 달려봐도 괜찮을거야. ”

지난달 연세대 동문회관에 마련된 세브란스병원 폐이식 500례 기념식. 지난 외래 이후 3개월 만에 만난 이진구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와 서경식(24·가명) 군이 근황을 주고 받느라 한동안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나이차가 20년 가까이 나는 두 남성이 수다 삼매경에 빠질 정도로 ‘브로맨스’를 과시하게 된 배경은 뭘까.

이 교수는 “(서 군을 처음 만났을 때) 180cm를 훌쩍 넘는 큰 키에 체중 50kg도 안 됐다”며 “폐이식 후 재활 치료를 하면서 살이 조금씩 붙더니 어느새 생존의 고뇌에서 벗어나 여느 20대들처럼 패션, 운동에 관심을 갖는 모습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의사와 환자로 만났지만 아들이나 친구 같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 말기 폐질환 치료, 최후의 보루 ‘폐이식’…대부분 뇌사자 기증장기에 의존


어렸을 때 조혈모세포이식(BMT)을 받았던 서 군은 자라면서 폐기능이 급격히 떨어졌다.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고 그로 인해 흉막강에 공기나 가스가 고이는 ‘기흉’이 수시로 찾아왔고, 기관절개관에 인공호흡기를 연결해야 호흡이 유지될 정도로 폐가 망가진 채 세브란스병원 폐이식팀에 의뢰됐다.

이 교수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는데 다행히 너무 늦기 전에 기증자(뇌사자)와 매칭이 되어 경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폐이식은 말기 폐질환 치료에서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이식수술이 쉽지 않지만 폐이식은 망가진 장기(폐)를 떼어내고 새 장기를 넣어주기까지 혈액과 산소를 공급해 줄 인공심폐장치(에크모·ECMO)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수술이 필요하다. 크게 우엽과 좌엽, 두 부위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간, 신장 등과 달리 면역학적으로 유사한 혈연관계에서 생체 폐이식을 시도하는 경우도 드물다. 생체 폐이식은 2명의 공여자에게서 각각 한쪽 폐의 절반씩을 받아야 하는데 공여자의 폐기능이 25% 가량 줄어들다 보니 조건 자체가 매우 까다로운 탓이다. 2021년 국내 폐이식 건수가 167건으로 신장이식(2227건)·간이식(1515건) 등에 비해 월등히 낮은 건 이런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폐이식수술이 많이 시행되는 질환은 특발성 폐섬유증(IPF)·만성폐쇄성폐질환(COPD)·낭성 섬유화증 등이다. 그나마 약물치료에 어느 정도 반응하는 환자는 적극적인 폐이식 고려대상이 아니다.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낭성 섬유화증이 드물어 류마티스관절염, 루푸스 등 자가면역질환이 폐를 침범해 폐가 딱딱해지거나 폐의 세기관지가 위축되면서 산소의 흐름이 줄어드는 폐쇄성 세기관지염 등으로 폐이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서 군처럼 골수이식 후 폐에 거부반응이 생겼거나 폐동맥고혈압으로 진단됐을 때도 폐이식을 고려한다. 공교롭게도 대부분 젊었을 때 생기는 병이다.

◇ 폐이식, 빠를수록 예후 좋은데…장기 수급난에 과반수가 에크모 달고 수술


이 교수는 “폐이식 적응증에 해당하면 에크모를 달아야 할 정도로 폐가 망가지기 전에 수술을 받아야 경과가 좋다”며 “특히 젊은 환자들은 수술 후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꾸준히 할수록 폐기능 회복이 빨라지기 때문에 동기 부여를 하려고 애쓰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외래진료와 수술 일정에 쫓기면서도 폐이식 환자들과 마주할 때마다 ‘운동 토크’에 열을 올리는 데는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이진구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국내 폐이식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병원은 올해 5월 60대 IPF 환자에게 폐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며 국내 최초로 단일기관 500례를 달성했다. 2021년 국내 전체 의료기관에서 시행된 167건의 폐이식 수술 중 53건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시행됐다. 국내 폐이식수술의 3분의 1가량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1996년 7월 이두연 흉부외과 교수의 집도로 폐섬유화증을 앓던 환자에게 국내 최초로 폐이식을 시행한 이래 △2009년 12월 양측 폐 재이식 △2015년 1월 폐이식·심장혈관우회로 동시 수술 △2015년 5월 세계 최초 뇌사장기폐이식·생체간이식 동시 시행 등의 기록을 세우며 국내 폐이식 분야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이 지난달 14일 연세암병원 서암강당에서 폐이식 500례 달성을 기념해 개최한 ‘연세 폐이식 아카데미’ 심포지엄에서 이진구 흉부외과 교수가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이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의 개인기 만으로는 불가능했던 성과”라고 잘라 말했다. 호흡기내과부터 감염내과·혈액내과·재활의학과·인터벤션 파트에 이르기까지 여러 진료과와 중환자실 의료진 간 팀워크가 수술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 그는 “장기수급의 어려움 등으로 국내 환자들은 선진국들에 비해 중증도가 높은 상태에서 이식받는 경우가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며 “여러 기관들과 협력해 국내 폐이식 치료 성적을 한단계 끌어올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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