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 설계도 등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삼성전자 전 임원이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삼성전자 상무와 하이닉스반도체 부사장을 지낸 A 씨는 중국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도를 기반으로 ‘복제 공장’을 세우려고 했다. 또 중국 청두시로부터 4600억 원을 투자받아 설립한 공장에서는 현재 20나노급 D램 반도체를 생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범행으로 국내 기업이 최소 3000억 원의 피해를 입었으며 향후 피해 금액이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기술 유출 범죄자를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중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인데도 수원지법이 이달 10일 보석금 5000만 원을 받고 A 씨를 석방한 것이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피고인의 주장을 계속 무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전략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된 피고인을 관대하게 풀어주는 법원의 결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반도체 기술은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됐을 뿐 아니라 고급 인재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기업과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런 자산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피고인이 쉽게 석방되는 것을 지켜보는 기업과 연구진은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해외 기술 유출 범죄는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10월까지 적발된 산업 기술 유출은 21건에 이른다. 기술 유출 건수는 10년 만의 최대치로 지난해보다 75% 증가했다.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이 14건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했으며 대부분 기업 내부 인사의 소행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의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다. 최근 5년 동안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중 1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6.2%에 불과했다. 기술 유출에 대한 대법원의 양형 기준도 1년~3년 6월에 그쳐 법정 최고형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 거액의 돈을 받고 핵심 기술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면 산업스파이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대폭 높이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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