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건설사들의 미청구공사비가 18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27% 이상 늘어난 규모다. 일종의 ‘외상값’으로 올 들어 각종 자잿값과 인건비가 치솟으며 예상보다 많은 추가공사비가 발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원자잿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원가율도 90%를 훌쩍 넘는 대형 건설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국내 10대 건설사들의 미청구공사비는 17조 49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3조 7400억 원)대비 약 27% 증가한 규모다. 직전 분기(16조 2000억 원)와 비교해서는 약 8% 늘었다. 미청구공사비는 건설사가 발주처로부터 아직 청구하지 못한 공사 금액을 뜻한다. 보통 자잿값이나 인건비 등이 급등해 예정보다 많은 공사비가 선투입됐거나 공사기간이 길어지는 등의 사유로 발생한다. 보통 건설사는 준공 단계에서 미청구공사비를 정산받는데, 만약 회수가 늦어지거나 불발되면 고스란히 손실로 남을 수밖에 없다.
미청구공사비는 사업 규모가 클 수록 많은 구조다. 건설사별로는 현대건설이 3조 9666억 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삼성물산 건설부문(2조 3734억 원), 포스코이앤씨(1조 8494억 원) 등의 순으로 미청구공사액이 컸다. 전체 매출 대비 미청구공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HDC현대산업개발이 43%로 가장 높았고 현대건설(35%)도 30%대를 기록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적정 미청구공사비 비중을 25% 이하로 본다. 현대건설의 경우 올해 수주액이 늘면서 미청구공사액 비중이 크게 늘었는데, 4분기에 공사대금을 받으면 20%후반대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분야에서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에서 발생한 미청구공사비가 가장 큰 규모를 차지했다. 대우건설·HDC현대산업개발·현대건설·롯데건설 등이 각각 2000~3000억 원의 미청구공사비를 잡아놨다.
정비사업 조합은 조합원에게 중도금과 잔금 등을 받아 건설사에게 미청구공사비를 포함한 잔금을 치른다. 다만 둔촌주공과 같이 조합과 시공사가 추가공사비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일 경우 회수 시기가 지연되거나 감액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남는다.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은 강남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에 각각 2684억 원, 3224억 원의 미청구공사비가 남아있다. 오는 30일 입주를 앞뒀지만 강남구가 준공승인을 보류하면서 잔금 납부가 늦어지고, 공사비 정산도 늦춰질 전망이다.
해외 사업 확대도 미청구공사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올 3분기 10대 건설사가 플랜트 등 해외 사업에서 달아놓은 미청구공사비는 3조 8500억 원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해외 발주처의 경우 부실 공사 등을 이유로 공사비 정산을 미루는 경우가 많아 미청구공사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중견 건설사들은 미청구공사비에 더 취약하다.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으면 공사비 회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세계건설이 대구에서 분양한 주상복합 아파트 ‘빌리브 스카이’와 ‘빌리브 프리미어’는 미청구공사를 포함한 총 533억 원의 공사미수금을 떠안고 있다.
게다가 매출원가율(매출액 대비 매출원가가 차지하는 비중)도 대형사를 중심으로 90%를 넘어서고 있다. GS건설의 매출원가율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96.8%로 4년 전(86.5%)보다 10.3%P 상승했다. 같은 기간 현대건설도 90.0%에서 93.9%, 대우건설도 90.1%에서 91.4%로 매출원가율이 상승했다. 이는 건설사의 원자잿값 매입 가격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매입 가격은 뛰었는데 발주처로부터 늘어난 공사비를 온전히 보상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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