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내각 지지율이 급속도로 악화하며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차관급 인사들의 불명예 퇴진과 설 익은 ‘감세 카드’에 대한 국민 반발이 이어지며 여당(자민당) 지지층의 ‘기시다 바나레(離れ·이탈)’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야당의 지리멸렬 속에 파벌 정치에 골몰 중인 여당의 현실도 무당파의 이탈을 부추기며 국정 동력을 깎아 먹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11월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10월 조사 대비 10%포인트 급락한 24%를 기록했다고 20일 보도했다. 이는 자민당이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은 2012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마이니치신문의 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4%포인트 떨어져 정권 출범 후 가장 낮은 21%로 집계됐고 아사히신문 역시 이날 4%포인트 하락한 25%의 지지율 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정권에서 비리나 정책 혼란으로 역풍을 맞았을 때도 30% 대의 지지율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에 정부 여당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아소 다로 정권 말기 양상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09년 8월 아소 정권의 지지율은 22%에 머물렀다.
당 지지층의 ‘기시다 이탈’도 심각하다. 자민당 지지자 중 ‘기시다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사 모두 58~59%에 그쳤다. 무당파층의 지지율 역시 아사히의 경우 14%에서 10%로 급감하며 11년 만에 최저를 나타냈다.
최근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최대 요인은 인사 실패다. 9월 이미지 쇄신을 위해 개각을 단행한 지 두 달도 안 돼 차관급 인사 5명이 추문에 휩싸였고 이 중 3명이 사임했다. 어린이가정청 설립을 주도했던 문부과학성 정무관이 불륜, 법무성 부대신은 선거법 위반, 세금을 관할하는 재무성 부대신은 과거 세금 체납 전력이 문제가 돼 옷을 벗었다. 옛 통일교 논란을 계기로 만든 ‘부당 기부 권유 방지법’ 소관 부처인 소비자청의 부대신은 통일교 교단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것이 드러났고 방위성 부대신은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다. ‘적재적소’가 실종된 난국에 이즈미 겐타 입헌민주당 대표는 “정책도, 인사도 총체적 붕괴”라고 날을 세웠고 모리야마 유타카 자민당 총무회장도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태”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내각 핵심 인사들의 사임 도미노와 관련해 ‘임명권자인 총리의 책임’이라는 답변이 61%로 ‘아니다’(35%)를 크게 앞섰다.
지지율 반전을 위해 내놓은 민생정책(소득 감세)은 설득력 부족에 부메랑이 됐다. 방위 증세를 추진하다 10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소득·주민세를 깎아준다는 정부 방침에 여론은 냉담했다. 감세를 꾸미는 수식어로 초반 ‘고물가 대책’을 내세우다가 이후 ‘디플레이션 탈피’ ‘육아 지원’ 등 새로운 논리를 갖다 붙이면서 신뢰도 잃었다. 아사히신문은 “소득 감세의 의의를 추궁당하는 사태가 되면서 총리가 설명에 쫓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감세에 대한 부정 평가는 68%로 집계됐고 정책 의도가 ‘선심성’이라는 답변(76%)이 많았다. ‘방위 증세와 감세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총리 주장도 ‘납득할 수 없다’(74%)는 응답이 많았고, 자민당 지지층에서도 ‘납득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60%에 달했다.
집권 여당의 장기 집권으로 인한 혁신 부족도 지지층 이탈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2012년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정권이 넘어온 뒤 야권의 부진 속에 ‘자민 1강’ 체제가 이어져 왔다. 야당의 부진 속에 자민당은 4~5개 집단을 중심으로 파벌 정치를 공고화했고 이는 정권 운영에도 영향을 끼쳤다. 재선을 위해 총리가 각 파벌의 눈치를 보고 이것이 부실한 인사와 정책 추진으로 이어지는 ‘혁신 지연’을 초래한 것이다.
지지율 약세 속에 기시다 총리는 내년 가을 총재 선거의 사전 단계로 염두에 뒀던 중의원 연내 해산을 단념했다. 당내에서도 ‘포스트 기시다’를 노린 경쟁자들이 잇따라 스터디 모임을 꾸려 기반 다지기에 나선 상황이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면서도 “국민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부 차원의 대응에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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