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을 들고 정부 지출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던 ‘괴짜’ 하비에르 밀레이가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페소화를 폐기하고 미국 달러화를 공용 통화로 채택하는 한편 중앙은행을 폐쇄하겠다고 공약해 아르헨티나의 대격변을 예고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가 도입할 수 있는 정책이 많지 않아 불확실성만 고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한편에서는 나온다.
19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자유전진당의 밀레이 당선인은 이날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개표가 91.81% 진행된 가운데 55.86%의 득표율로 44.13%의 표를 얻은 집권당 후보이자 현 경제장관인 세르히오 마사(51)를 따돌리고 승리했다. 그는 지난달 본선 투표에서는 29.99%의 득표율로 마사(36.78%)에게 밀렸지만 이날 결선투표에서 역전 드라마를 썼다. 밀레이 당선인은 다음 달 10일 공식 취임한다.
아르헨티나는 2019년 집권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페론주의식(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 이념) 과도한 무상 복지 정책으로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은행은 정부의 무상 복지로 구멍 난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페소화를 무분별하게 찍어냈고 이는 페소화 가치 급락과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10월 물가 상승률은 32년 만에 최고치인 142.7%에 달했다. 중앙은행은 페소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보유 외환을 시장에 풀었고 이에 외환보유액은 바닥 나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까지 전락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서 마사 후보는 의무 공교육 확대, 보건 예산 증액 등 또 다른 포퓰리즘을 공약했다가 낙선했다.
반면 밀레이 당선인은 페소화를 미국 달러로 대체하며 중앙은행에 대해서는 ‘폭파’하겠다는 표현까지 쓰는 충격요법을 제시하며 표심을 공략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40%인 공공지출 규모를 15%까지 줄이고 적자 공기업을 민영화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기톱을 들고 정부 지출을 줄이겠다는 유세를 하기도 했으며 스스로를 ‘무정부 자본주의자(anarcho-capitalist)’라고까지 칭했다. 이 외에 장기 매매 합법화, 무기 소지 완화, 지구 온난화 이론 배격 등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외교 분야에서도 큰 변화를 예고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중국에 대해 “공산주의자들과 거래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중국에는 자유가 없고 누군가 원하는 것을 하려 할 때 그를 살해한다”고 언급하는 등 노골적으로 반중 감정을 드러냈다. 밀레이 당선인은 8월 승인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입(내년 1월)도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미국·이스라엘과의 협력은 공고화하겠고 밝혔다.
화려하게 출발하는 밀레이 당선인이지만 앞날은 녹록지 않다. 긴축 정책은 밀레이 당선인이 속한 정당연합이 의회 다수당이 아니어서 얼마나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당장 올해 말에는 물가 상승률이 18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며 내년에 IMF·외국인투자가에 220억 달러의 부채를 상환해야 해 시간이 많지 않다. 상황 반전을 위한 달러화 도입도 중앙은행 보유 달러가 고갈돼 있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만약 급진적으로 페소화 폐지 및 달러화 도입을 추진한다면 외환시장에 대혼란이 우려된다. 그럼에도 밀레이 당선인은 당선 일성으로 “급격한 변화를 추구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대니얼 커너 이사는 “장기적인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한편 아르헨티나에서 극우 인사가 대통령이 되면서 중남미 대륙에 불던 온건 좌파 정부 물결(핑크 타이드)의 기세가 꺾일지 이목이 쏠린다. 남미에서는 2018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페루·볼리비아·칠레·브라질·과테말라 등이 잇따라 좌파 정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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