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미국 대선이 치러진다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이기고 당선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대선 6개 핵심 경합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2주 전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위스콘신 1개 주를 제외하고는 5개 주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5% 정도의 차이로 여유롭게 따돌렸다. 6개 주 모두 지난 대선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한 지역이어서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퀴니피액대·CNN·CBS 등 주요 기관이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모두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11월 7일 치러진 주 단위의 선거에서는 오히려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오하이오에서는 낙태권을 명시한 주 헌법 개정안을 놓고 주민 찬반 투표가 치러졌는데 넉넉한 과반 찬성표가 나와 통과됐다. 미니 대선으로 불린 버지니아주 의회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상원뿐 아니라 하원까지 장악하는 쾌거를 거뒀다. 공화당 성향인 켄터키에서도 민주당 주지사가 재선에 성공했고 펜실베이니아 대법관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했다. 경합주와 공화당 텃밭에서 거둔 승리여서 민주당에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백악관은 “여론조사와 실제 표심은 달랐다. 바이든 대통령의 가치와 의제가 전국적 승리를 거뒀다”고 자평했지만 대선 여론조사와 주 단위 선거 결과의 괴리는 지금 민주당이 안고 있는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고민은 민주당의 인기는 공화당에 비해 괜찮지만 바이든 대통령으로는 내년 대선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히 억울하고 섭섭하기도 할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1992년 빌 클린턴은 이 한마디를 던지고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경제 실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당선됐다. 그만큼 대선에서 경제가 중요한 변수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미국 경제는 상당히 양호하다. 지난 3년 미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훌쩍 웃돌고 고용지표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단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이 문제인데 이 역시 잡히는 추세다. 바이든 정부의 무역·산업 정책은 세부 내용에 대한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 양당 모두 지지하고 있다. 외교정책도 반대보다는 여전히 지지를 더 많이 받고 있다. 고령이 최대 약점으로 꼽히지만 트럼프와의 나이 차는 기껏해야 세 살 반이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왜 여론조사에서 고전하는 것일까. 그는 선천적으로 인기가 없는 정치인이다. 어떤 정치인은 진실성이 있고 인간성도 좋고 정책에도 밝지만 주변에 사람이 몰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와는 정반대지만 사람을 구름같이 몰고 다니는 정치인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후자라면 바이든 대통령은 전자다. 바이든 대통령은 긴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기 전까지는 전국적인 지명도가 없던 정치인이다. 1988·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지만 4% 남짓 되는 지지율에 두 번 모두 조기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2016년 경선은 훨씬 더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2020년 경선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고전했지만 트럼프의 대항마로 안정감 있는 후보를 희망한 민주당 표심 덕에 후보를 거머쥐었고 결국 당선됐다. 그의 승리라기보다는 코로나19 전염병 대응 실패로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은 트럼프의 패배였다. 바이든은 ‘액시덴털 프레지던트(accidental president)’, 즉 우연히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와는 달리 민주당 대선 후보는 다양한 전통 지지층의 지지를 모두 결집해내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려면 오바마나 존 F 케네디와 같이 젊고 역동적인 정치인이 필요하다. 아니면 린든 존슨이나 지미 카터같이 남부 출신으로 북부뿐 아니라 공화당 성향인 남부의 지지까지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에서 1년은 평생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1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으로는 민주당의 내년 대선 승리가 난망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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