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청년층을 비하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세웠다가 철회하는 소동을 벌였다. 민주당은 최근 2030세대를 겨냥해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등의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공개해 청년층을 무능하고 이기적인 세대인 것처럼 조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혼자 살고 싶댔지 혼자 있고 싶댔나?’ 등의 황당한 문구도 등장했다. 민주당은 “개인성과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2030세대를 위주로 진행하는 캠페인”이라고 둘러댔다가 뒤늦게 마지못해 사과했다. 당내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홍보물’이라는 탄식까지 흘러나왔다. 청년들을 정치·경제에 무지한 계층으로 내몰면서 득표 수단으로만 삼았다는 것이다.
이번 현수막 소동은 ‘청년 정치’가 부재한 우리의 척박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강성 팬덤층에 매달려 변변한 청년 정책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내에서도 미래 세대의 고민이나 좌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이들의 고통을 키우고 있는 전세 사기 문제와 관련해 제때 보완 입법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대표적 사례일 뿐이다.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도 정부가 제출한 청년 예산 3000억 원 중 청년 취업 지원을 위한 2382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일자리에 목말라하는 젊은 층에 돌아갈 금쪽 같은 예산을 날려버린 셈이다.
낡아빠진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사고’에 파묻힌 정치권의 현주소를 드러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민주당에서는 최근 ‘어린 놈’ ‘민주화 교육 부족’ ‘반공 교육’ 등 청년층 비하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선민 의식에 사로잡혀 청년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는 오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노동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치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이제 막 노조를 시작하는 MZ세대 분들은 깊이 사고하거나 직접 경험해본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MZ 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조합원들의 권익 및 복지와 관계 없는 정치적 구호와 폭력 시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니 국민 70%가 ‘우리 사회에 586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표심을 노리고 청년 정치와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그 많던 청년들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40세 미만 국회의원은 21대 국회를 기준으로 4.3%에 불과한 반면 북유럽 국가들의 청년 의원 비율은 30%에 달한다. 유럽에서는 개방적인 정치 제도와 정당정치 문화가 젊은 정치인들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청년 정치는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젊은 지도자들을 적극 육성하고 새로운 피를 정치권에 수혈해야 한다. 유럽처럼 청년 단체를 육성하고 대학가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에드워드 히스,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등은 이런 과정을 거쳐 정치 지도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청년 층을 선거 때 차비 몇 만원을 손에 쥐어주는 표퓰리즘으로 매수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무분별한 현금 살포는 결국 미래 세대의 빚더미로 고스란히 남게 된다. 경제활동이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은 올해 1~10월 평균 41만 명에 달했다. 우리 청년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기업 투자 확대와 청년 창업 활성화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여야 정치권은 선거 때면 청년들을 대상으로 선심성 퍼주기와 사탕발림 공약을 쏟아내면서 표를 얻겠다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년 세대의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생색내기 정책으로 일관한다면 오히려 정치 혐오를 부추길 뿐이다. 여야는 더 이상 자극적인 문구로 2030세대를 현혹하지 말고 진정한 청년 정치와 청년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선거 때마다 청년들을 일회용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젊은 층의 발목을 잡으면서 젊은 층 표는 얻고 싶어 하는 정치권의 ‘청년팔이’ 선거는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됐다. 우리 정치권이 나라의 미래와 경제를 위한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을 벌여 선거의 격을 높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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