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7일 발생한 행정 전산망 먹통 사태가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포트 불량 때문이라고 25일 밝혔다. 라우터의 물리적 손상으로 전산망이 마비됐다는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사고 원인을 밝혔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사용 기한도 지나지 않은 라우터가 왜 고장 났는지 오리무중이다. 또 매일 육안 점검을 실시하는데도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초기에 ‘L4 스위치’ 오류를 문제로 지목했다가 8일이 지나 고장 원인이 바뀐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국가 전산망이 특정 장치의 오류로 장애를 일으킨 데다 조기 대응마저 실패했으니 총체적인 시스템 관리 부재를 탓할 수밖에 없다.
행정 전산망 먹통 이후에도 22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시스템 오류, 23일 조달청 나라장터 시스템 접속 지연, 24일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 중단 등 1주일 새 네 차례의 마비 사태가 잇따라 발생했다. 외부 해킹 등이 아닌 일시적 접속량 증가에 행정이 마비됐다는 사실은 우리 전산망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사태로 ‘전자 정부 선진국’을 자처했던 자부심은 땅에 떨어졌으며 국가 전산망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무너졌다. 평상시에도 우왕좌왕하는데 외부의 대규모 해킹 공격이나 전시·천재지변과 같은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세밀하게 규명해 이중화 장치 등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에게 전산망 개발을 맡긴 것이 화를 키웠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쪼개기 발주 방지를 위해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 제한 등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정부 시스템 개발·운영에 참여하는 업체가 1400여 개에 달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정부 사업에서 가격이 입찰의 승패를 좌우하는 구조도 뜯어고쳐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불요불급한 예산을 최대한 아껴 국가 전산망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인기 영합 선심 정책을 차단하고 예산을 전산망 개발·관리에 적극 투입해야 더 이상의 행정망 먹통 사태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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