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는 민주 체제에 있어 불가결의 본질적 요소다. 이는 개인의 주관적인 자유인 동시에 사회와 국가의 기본적 가치 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하고 있지만 방송은 여전히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공영 지상파 방송은 국가 자원인 주파수를 무료로 사용하고 의무 재송신을 통해 유료 방송망으로도 전 국민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존재다. 공영방송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기반으로 당시의 시대 가치를 반영해 국민들의 가치 공감대를 제고하는 ‘사회적 접착제’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행 방송법에서는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이사회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야당은 공영방송 이사회들의 지배 구조 변경을 위해 단독으로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이 법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절차적으로는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는 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법과 제도는 마치 도로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 잘못된 방향으로 길이 날 경우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방송법처럼 국가의 운명과 직접 관계되는 법률의 경우에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여야가 합의 처리하는 게 순리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유지돼온 이사회의 지배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는 법률을 성급하게 처리할 경우 이후의 혼란과 난맥상이 심히 우려된다.
방송법 개정안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헌법 원칙에 위반된다. 이 법이 21명의 이사 구성 방식을 독일 제2공영방송(ZDF)의 선례를 따랐다고 하는 것도 ‘가짜 뉴스’에 가깝다. 독일 ZDF는 66명의 이사들을 ‘방송 분야’가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균형 있게 선출한다. 반면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 관련 학회와 직능단체, 방송사 시청자위원회에서 16명이나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방송 분야 관계자가 이사의 대부분을 차지해 방송 분야만을 과잉 대표한다. 형식적으로만 독일과 유사할 뿐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공영방송이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변해야 한다는 헌법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법에서 명시한 3개 직능단체는 편파성에 대한 지적이 많고, 많은 직능단체 중에서 3개 단체에서만 이사를 추천받을 논거도 빈약하다. 또 이사 수를 과도하게 증원하면 통상 비상임이사 숫자가 대폭 늘어난다. 이사회가 최고 의결 기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영 혁신에 역행하고 의사 절차의 비효율성만 가중시킬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메타버스, 챗GPT 등 새로운 정보기술(IT)과 미디어 서비스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BBC·NHK 등 글로벌 공영방송사들은 경영난 타개와 공정성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 역시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공영방송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헌법 원칙과 해외 사례, 그리고 공영방송의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이번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멀티미디어 시대에 적합한 공영방송의 미래상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들과 국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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