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힐듯한 정적이 객석을 감쌌다. 피아노의 카덴차를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가는 임윤찬의 손에 모든 시선이 쏠렸다. 눈 뗄 수 없는 긴장감으로 가득 찬 오롯한 피아니스트 임윤찬(19)의 시간이었다.
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한국인 지휘자와 협연자의 만남으로 눈길을 끌었다. 서울시향의 전 음악감독이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첫 수석 객원지휘자인 정명훈(70)과 임윤찬이 호흡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주는 한국에 앞서 지난 15~16일 독일 뮌헨에서 먼저 열렸다.
이날 공연에서 정명훈이 이끄는 뮌헨 필과 임윤찬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선보였다. 또 하나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난 12일 같은 장소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1악장의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시작과 동시에 임윤찬은 유려하게 화음을 펼치면서 완벽한 무대를 예고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꿈결같은 선율을 그리는 1악장에서 임윤찬은 다양한 변신을 이어나갔다. 때론 꽃이 피어나듯 생동감 넘치게, 때론 침강하는 화음의 여운을 느끼는 임윤찬의 연주에 청중의 몰입감이 깊어졌다. 왼손의 터치는 묵직한 울림을 낳으며 또렷하게 곡을 이끌어갔다. 천재의 연주를 유연하게 포용하는 정명훈의 지휘도 아름다운 조화를 그려냈다.
2악장에서 사라질 듯 희미하지만 또렷한 연주를 이어간 임윤찬은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활기에 맞춰 매끄럽게 음악을 쌓아 올리며 균형을 유지했다. 피날레로 갈수록 가볍고 다채롭게 선율을 장식하던 피아노는 산뜻하게 오케스트라와의 동행을 마무리했다. 임윤찬은 이어지는 앙코르 연주로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들려주면서 다시 한 번 역동적인 해석을 선보였다. 무대 앞쪽에 앉아있던 한 관객이 임윤찬에게 레고로 된 장미꽃을 건네며 벅찬 감동을 표현하기도 했다.
2부에서 정명훈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연주하며 뮌헨 필의 상반된 매력을 펼쳤다. 베토벤의 폭넓은 주제 의식이 담겨 있는 이 곡에서 정명훈은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조율했다. 후반부 현악기가 피치카토에 이어 관악기와 함께 펼쳐낸 부점 리듬은 자유를 향한 베토벤의 열망을 고스란히 드러낸 듯했다.
본 연주가 마무리된 후 정명훈과 뮌헨 필은 한국 관객을 향한 ‘깜짝’ 선물을 선사했다. “이 곡은 대한민국에서 한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정명훈의 소개에 맞춰 앙코르곡으로 짧게 아리랑을 연주한 것. 팀파니의 웅장한 연주로 시작한 아리랑은 관악기 연주자들의 기립에 맞춰 평화롭게 공연장을 채웠다.
뮌헨 필의 여정은 이번 주 내내 계속된다. 임윤찬은 오는 29일 세종문화회관과 다음달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협연을 이어간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은 28일 경기 광주 남한산성아트홀, 30일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연주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