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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 100주년 지나가는데…日 정부, 시종일관 학살 언급 회피

간토대지진 서술 축소한 일본 초등교과서 모습. 사진=연합뉴스




올해 간토대지진 발생 100주년을 맞는 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고 교도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이날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기시다 총리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과 관련한 문서가 외무성에 남아 있다는 후쿠시마 미즈호 사회민주당 대표의 지적에 대해 "특정 민족이나 국적 사람들을 배척하는 부당한 차별적 언동은 허용되지 않는다"고만 말했다.

후쿠시마 대표는 외교사료관 소장 자료를 바탕으로 1924년 당시 외무상이 주중 공사에게 보낸 전보 등에서 위자료를 지급한 기록을 언급하며 "살해를 사실로 인정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도 이날 예산위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일본 정부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여러 차례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았으나 매번 사실을 공문서로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8월 30일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이 자행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00년 전 조선인 학살이 자행됐음을 사실상 뒷받침하는 일본 정부 문서에 답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지난 9일 참의원(상원) 내각위원회에서 이시가키 노리코 입헌민주당 의원이 1924년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각의(閣議)에서 결정한 문서를 언급하며 조선인 학살에 관한 일본 정부 입장을 물었다. 이 문서에는 "1923년 9월 대지진 당시에 혼란스러웠을 때 조선인 범행의 풍설(風說·소문)을 믿은 결과, 자위의 뜻을 갖고 잘못해서 살상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서는 범행의 경중에 따라 특사 혹은 특별특사의 절차를 행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일본 정부의 모르쇠는 이달 17일에도 지속됐다. 구스노키 요시노부 경찰청 관방장은 또 다른 입헌민주당 의원이 해당 문서에 대해 질의하자 "문서 자체가 매우 오래된 것이어서 그 이상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며 "사실관계에 대해 확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곤란하며,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기록을 찾아 제시해도 일본 정부가 조선인 학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탓에 조선인 학살 사건의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은 별다른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발생 직후 일본 사회에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한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조선인이 자경단, 경찰, 군인에게 학살당했다. 독립신문은 당시 조선인 학살 희생자가 6661명이라고 보도했다.

/황수민 인턴기자 su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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