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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하루] 아편과 난징조약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요즈음 마약이 난리다. 마약 청정 지역인 줄 알았던 대한민국도 지금 각종 마약의 유통으로 인한 중독 문제가 심상치 않다. 마약의 일종으로 양귀비에서 추출하는 아편(opium)은 진통과 환각 효과를 가지고 19세기 중국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바 있다. 널리 알려진 아편전쟁이 그 결과다.

물론 중국에서 아편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됐고 명 시대에 아편은 최고의 명약으로 인정받았다. 청 시대에 들어와 아편 중독이 확산하자 학자·관료, 그리고 황제까지도 아편을 합법화하느냐 전면 금지하느냐를 놓고 의견을 달리했다. 주로 지루함이나 정신적 중압감을 겪는 환관, 만주족 관리, 부유한 가정의 부녀자, 과거를 준비하는 학생, 반란군을 진압하러 나간 군인들이 아편을 피웠다. 19세기가 되면 노동자들도 고된 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해 아편을 즐겼다.



영국은 아편으로 얻는 수입이 국제수지에 결정적으로 중요했기에 도덕적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편 무역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도산 아편이 중국으로 수입될수록 중국의 은은 외부로 빠져나갔고 결국 도광제는 아편 무역을 일방적으로 금지시켰다. 끝내 1839년에서 1842년 사이에 아편 무역을 매개로 청과 영국 사이의 전쟁이 발생했다. 중국 사학자 조너선 스펜스는 아편전쟁에 대해서 “만주족이 받은 공격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군사기술과 전술상의 혁신을 보여준 전쟁”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결과는 청의 패배였다.

전쟁 결과 1842년 8월 29일 양쯔강과 대운하가 연결되는 난징에서 양국 사이의 조약이 체결됐다. 이른바 난징조약이다. 모두 12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놀랍게도 아편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다. 과연 아편전쟁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영국과 청이 실제 원하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아편은 서로에게 구실이자 명분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 전쟁을 ‘제1차 중·영전쟁’으로 부르자는 학자들이 있었으나 파급력은 미미했다. 역시 대중은 아편처럼 강렬하고 중독적인 용어를 좋아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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