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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역사 바꿀뻔 한 '결정적 패착' 세 가지는[일큐육공 1q60]

[영상] 12.12 군사반란 전후 타임라인 총정리

유튜브 채널 일큐육공서 100만 뷰 돌파

김성수 감독 "당시 아무도 맞서지 않았다면

패배가 아닌 승리의 역사로 기록됐을 것"



‘서울의 봄’ 보기전 필수! 실존인물 +실제역사, 12.12 반란 직후 결말까지 타임라인 총정리(영상) | 일큐육공 유튜브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위시한 신군부 반란 세력과 끝까지 맞섰던 군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훗날 신군부 세력의 반란죄·내란죄가 입증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아무도 맞서지 않았다면 신군부 세력은 승리자로 영원히 역사에 기록됐을지 모른다. 영화 '서울의 봄'을 만든 김성수 감독의 말이다.

12·12 군사 반란 이야기를 다룬 첫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이후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배우 황정민의 머리를 바친 영화' '진짜 아수라였던 12·12 사태' 등 반응도 뜨겁다. 서울 도심 한복판, 엎치락뒤치락 공수가 수시로 뒤바뀌고 오직 극소수만이 끝까지 저항했던 그날 역사적 사건을 좀 더 제대로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궁금한 건 두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일큐육공 수사팀이 나섰다.

영화 보기 전 예습부터, 관람 후 복습까지 한 큐에 끝내는 12·12 군사반란 전후 타임라인 해설 영상을 야심차게 준비했다. 영화에는 안 나오는, 영화보다 더 생생한 각종 기록들까지 탈탈 털어 정리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과 실존인물 간 싱크로율 비교부터 대한민국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었던 세 가지 패착 장면들까지 꼼꼼히 분석했다. 전체 영상은 서울경제 유튜브 <일큐육공 1q60>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란 직전, 전두환이 동해로 좌천될 뻔 했다? =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전두광 역/황정민 배우)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사건을 수사한다. 그가 경찰과 검찰, 정부 인사들까지 주무르며 힘을 점차 키워나가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정상호 역/이성민 배우)은 전두환과 하나회 무리들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이때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을 뒤바꾼 1차 패착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에서는 배경 설명이 자세히 나오지 않는 장면이다.

정 총장은 노재현 국방장관(오국상 역/김의성 배우)을 찾아 전두환 사령관을 동해로 좌천시킬 것을 건의한다. 그런데 이 말을 전두환에게 직접 전한 인물이 있다. 바로 김용휴 국방부 차관. 전두환은 쿠데타 이후 그를 총무처(현재의 행정안전부) 장관 자리에 임명할 만큼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용휴 차관이 말을 전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역사가 통째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일큐육공 유튜브 캡처


일큐육공 유튜브 캡처


일큐육공 유튜브 캡처


◇9공수여단이 싸웠다면?…거듭되는 패착 = 12월 12일 저녁 전두환 사령관이 마련한 '생일 집 잔치'에 초대됐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태신 역/정우성 배우)과 정병주 특전사령관(공수혁 역/정만식 배우),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김준엽 역/김성균 배우). 이들이 술잔을 기울이려던 찰나 정 총장이 병사들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인천 9공수여단을 서울로 진격시킨다. 그때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 노태우 당시 제9보병사단장(노태건 역/박해준 배우)이 자결을 결심했었다는 기록까지 남아있다. 노태우는 자신의 9사단 병력까지 서울로 끌어들였는데, 9사단은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였다. 자칫 북한군이 남침할 수도 있었던 일촉즉발 상황이다.



바로 이때 두 번째 패착이 발생한다. 벼랑 끝에 몰린 황영시 제1군단장(한영구 역/안내상 배우)과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배송학 역/염동헌 배우)가 "서울 한복판에서 아군끼리 전쟁을 벌일 것이냐"면서 신사협정을 제안하는데, 이를 육군본부 측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9공수여단은 회군했지만 반란은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패착은 영화 속 웃음 포인트이기도 했던 노재현 장관의 숨바꼭질 후 벌어진다. 8시간 만에 육군본부에 나타난 그는 벙커에 몰려있을 게 아니라, 병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수경사로 대피하자고 결정한 것. 만약 9공수여단이 반란군을 진압하고 군 수뇌부도 벙커에 계속 머물렀다면. 그렇게 시간을 벌어 아침이 밝았다면 반란군의 운명은 뒤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큐육공 유튜브 캡처


일큐육공 유튜브 캡처


영화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 일큐육공 유튜브 캡처


◇그해 겨울의 기억, '서울의 봄'인 이유 = 12월 14일 신군부 세력은 쿠데타를 승리의 역사로 기념하며 단체사진을 찍어 남긴다. 영화 결말에 나오는 바로 그 사진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이후 청와대 수석, 장관, 국회의원, 공사 사장, 서울시장 등 주요 요직들을 꿰차며 승승장구했다.

쿠데타 이듬해인 1980년, 유신헌법 폐지와 민주적 선거를 요구하는 시민사회 목소리가 거세지자 최규하 정부는 긴급조치를 해제하고 민주 정부 출범을 약속한다. 개강 시즌인 3월에는 대학생들도 가세해 전국적인 전두환 퇴진 운동으로 확대된다. 이때가 바로 민주주의를 향한 희망의 시기, 일명 '서울의 봄'이다.

신군부는 개헌 논의를 앞둔 5월 17일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킨다.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 해산과 동시에 초법적 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설치해 모든 실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며 거센 저항이 벌어졌지만 신군부는 철저히 무력으로 진압한다. 전두환은 12·12 반란 이후 약 1년 뒤인 그해 9월 대통령 자리에 오르며 한반도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쿠데타 장본인으로 기록됐다.

이는 영화에선 나오지 않는 결말 이후 상황이다. 영화 제목이 '서울의 봄'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빼앗은 것은 고작 대통령 자리 하나가 아니라고. 그들의 누린 달콤한 승리의 기록이 아닌 대한민국 민중이 짓밟히고 민주주의가 유린당한 ‘패배의 역사’이자 ‘잊어서는 안 될 기록’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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