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계에는 무슨 이슈가 있을까? 가요 담당 허지영 기자가 친절하게 읽어드립니다.
"포도알이 그대 마음에 차지 않을 땐 속상해 하지 말아요. 매진이 그댈 암표를 원하게 해도 짜증 내지 마세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여러분의 배려가 좋은 공연 문화를 만듭니다. 암표는 사지도 팔지도 맙시다."
'암표는 사지도 팔지도 맙시다'. 이번 달 열리는 이소라의 연말 공연에 앞서 소속사가 올린 공지문이다. 가요계는 최근 '암표'와의 전쟁이다. 각 아티스트의 소속사를 비롯해 아티스트 본인이 '등판'해 암표 거래 근절을 독려하는 데 이어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이하, 음레협)는 암표 법률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전히 티켓을 '싹쓸이'한 암표상들은 15만 원짜리 티켓을 100만 원 이상으로 둔갑 시키고, 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티켓을 사지만 이마저도 사기를 당하는 등 이중고를 겪는다.
◇2년 만에 10배 증가...500만 원 티켓 등장 = 암표가 하루 이틀 문제만은 아니다. 다만 올해 들어 그 규모가 지나치게 커졌다. 10여 년 암표상들은 주로 개인전을 펼쳤다. 거래 장소는 주로 콘서트 현장. 이들은 불법적으로 취득한 여러 장의 티켓을 거머쥐고 아이돌 콘서트 장을 배회하며 암표를 거래했다. 가격은 티켓 정가의 30% 비싼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암표는 조직화됐고, 규모도 커졌다. 지난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체부 유관기관 국정감사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중음악 공연 암표 신고는 2020년 359건에서 2년 만에 4,224건으로 훌쩍 뛰었다. 코로나19 종식에 따라 공연이 많이 열리는 흐름을 감안해도 폭발적인 증가세다. 시세도 한계가 없다. '피켓팅'으로 유명한 임영웅의 콘서트는 500만 원이 넘어가는 암표가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제출한 '공연 예매 및 암표 거래에 대한 이용자 의견 조사'에 따르면 공식 예매처 외 티켓 구매 시 거래 피해 금액은 10만 원~20만 원 미만이 가장 많았고, 50만 원 이상도 5.7%에 달했다.
◇매크로부터 댈티까지...넓어지고 치열해진 암표 세계 = 올해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가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업계 관계자·소비자가 정의하는 '암표'는 ▲오프라인에서 웃돈을 받고 개인으로부터 현장 구매한 티켓 ▲상행위 목적으로 예매한 티켓 ▲중고거래&리셀(재판매) 사이트의 정가 이상의 티켓 등을 뜻한다. 최근의 고가 암표 및 사기 거래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활개 친다. 중고 거래에서도 직거래보다 선입금 택배 거래가 사기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암표는 어떻게 발생할까. 암표상들은 조직적으로 매크로(Macro·티켓팅을 할 때 좌석을 빠르게 잡을 수 있는 컴퓨터 명령어의 총칙)를 개발해 티켓 사이트에서 티켓을 잡는다. 고전적인 방법은 '포도알'이라고 불리는 '예매 가능 좌석' 색상값을 컴퓨터에 미리 입력해 컴퓨터가 티켓을 잡도록 하는 식이다. 매크로를 사용할 시 티켓 사이트에서 예매부터 결제까지 걸리는 시간은 8초 이내다. 포도알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는 사람의 속도로는 따라갈 수 없다.
애초에 웃돈을 지불하고 '티켓팅 능력'을 사고파는 '대리 티켓팅'도 횡행한다. 매크로 등 불법 티켓팅 프로그램을 보유한 암표상이 구매자에게 '선입금'을 받고, 구매자의 아이디로 대신 티켓팅을 진행한다. 설령 구매자가 원하는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선입금은 환불되지 않는다. 암표상이 구매자가 원하는 자리를 잡았을 경우, 10만 원 이상의 '수고비'를 추가로 받는다.
암표가 주로 유통되는 곳은 포털 사이트의 대형 카페인 중고나라와 X(구 트위터)다. 특히 X에서는 아이돌 콘서트가 고가로 거래된다. 가격은 '제시'다. 이용자들이 다이렉트 메시지(DM)으로 가격을 부르면 판매자는 그 중 최고가를 제시한 이에게 티켓을 양도한다. 그러나 대부분 카카오톡 오픈 채팅 등 신원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래하는 터라 사기가 판친다. 아이돌 팬들은 '먹튀 계좌', '사기 계정' 리스트 등을 공유하면서도, 암표상들의 '싹쓸이 티켓팅'에 당해 또 다시 암표를 찾게 된다.
◇21세기 콘서트에 '나루터'가 웬말...법 개정 필요해 = 업계 관계자들은 조직화되고 거대해진 암표 시장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음레협은 지난달 접수한 암표 법률 개정 청원이 공개 청원으로 결정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개 청원은 결정일로부터 30일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해당 청원을 처리하고, 90일 내에 결과를 통지한다.
그동안 티켓 부정 판매자는 형법 제314조에 따른 '업무방해죄' 또는 경범죄처벌법 제2항 등으로 처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업무방해죄'의 피해자는 포털 사이트나 파워 링크 광고주 등에 한정됐다. 경범죄처벌법의 기준은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그 밖에 정하여진 요금을 받고 입장 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 시키는 곳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 또는 승선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이다. 이 법안은 약 50년 전에 제정돼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온라인에서 거래한 암표는 처벌 대상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음레협이 이번 법안 개정에서 골자로 삼는 지점이다. 음레협 윤동환 회장은 "현 경범죄 처벌법은 장소가 공연장 입구로 한정돼 있다. 실제로 처벌받은 경우도 입구에서 입장을 시키다 걸린 경우다. 이는 예전에 온라인 티켓이 없을 때 가능했지, 지금은 온라인으로 거래하고 티켓을 주고받기 때문에 처벌 대상에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 등을 다 포함해야 한다"고 짚었다.
암표를 만들어 내는 '매크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올해 초 국회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입장권 등의 부정 판매를 금지하는 공연법 개정안이 통과돼 내년 3월부터는 매크로가 불법으로 간주되게 됐지만(누구든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에 지정된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입장권 등을 부정 판매하여서는 아니 된다), 현실적으로 분업화된 암표상 개개인의 매크로 구매를 적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윤 회장은 매크로 처벌이 어려운 이유로 암표상의 조직화·기업화를 꼽았다. 윤 회장은 "최근 암표상들은 아르바이트를 구해 그들에게 아이디와 수당을 주고 구매를 시킨다. 아이디도 다른 곳에서 산 아이디다. 이러니 아르바이트를 처벌할 수도, 아이디를 산 사람을 처벌하기도, 아이디 명의자를 처벌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암표상을 잡아내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우선 경범죄 처벌법에서의 '암표' 정의가 잘못돼 있으니 이것부터 고치고, 이를 강화해 나가며 매크로 처벌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