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이 극에 달하자 정부가 50조 원 이상의 자금 투입을 공언하며 자금 시장 위기 진화에 나섰다. 부동산 PF 사업장들은 고비를 넘겼지만 지난 1년간 시장 침체 속에서 정상화 수순을 밟지 못하고 금융기관의 지원에 기대 겨우 연명하는 상태다. 미미하게나마 살아나는 듯했던 부동산 시장이 다시 꺾이고 연말 PF 시장의 자금이 마르면서 금리도 다시 치솟는 추세다. 결국 공매에 내몰리는 사업장뿐만 아니라 부도를 내는 중소 건설사들 숫자도 늘고 있다.
3일 PF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PF 대출 금리는 선순위 기준 10%를 넘기며 최근 두 자릿수까지 올랐다. 상환 순위가 뒤로 밀리는 중·후순위는 이자제한법상 상한선인 20% 가까이 찍히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보다 투자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고금리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말로 접어들면서 자금 시장의 유동성은 더 말라붙었다. 부동산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높은 금리를 제시해도 미분양 우려가 조금이라도 있거나 시공사 신용도가 불안하면 투자자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외국계 펀드나 법인 자금 등 다각도로 영업을 확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상한선인 20%를 넘기지 않기 위해 대출 약정서상 이자는 20%로 표기하고 수수료 명목으로 추후에 별도의 이자를 받겠다는 경우도 있다”며 “만기가 도래한 사업장은 공매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이마저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달 자금 조달을 앞두고 있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 한강호텔 부지 개발 사업은 도시형생활주택에서 고급 주택으로 상품을 변경했다. 미분양 우려가 커지자 기존 브리지론 대출을 해준 일부 금융회사가 발을 뺀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주간사인 삼성증권은 부족액 대부분을 신용공여를 통해 인수할 예정이다.
만기가 긴 PF 대출을 1~6개월 단위로 쪼개 채권화한 유동화증권(ABCP·ABSTB) 금리도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증권사들의 단기 조달금리가 오르면 PF 대출 금리도 덩달아 뛰게 된다. HL디앤아이한라가 시공하는 ‘김해 안동 한라비발디’ PF 유동화증권은 지난달 28일 3개월물이 9.5%에 발행됐다. 지난해 5월 27일 발행했을 때 금리가 3.08%였던 것을 감안하면 무려 2배 이상 올랐다. ‘대구 야외음악당 두류센트레빌’은 지난달 24일 3개월물 PF유동화증권을 9.6%에 발행했는데 이 역시 지난해 3월 24일 발행된 3.85% 대비 크게 상승했다. 두 곳 모두 시공사인 HL디앤아이한라와 동부건설이 자금 보충과 조건부 채무인수 부담을 지고 있음에도 금리를 크게 낮추지 못했다.
시공사 신용도가 낮거나 자금 보충 등 신용공여를 제공하지 않는 사업장은 아예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고 있다. 지난달 만기가 도래한 200억 원 규모의 전북 전주시 덕진구 공동주택 개발 사업장의 PF 유동화증권은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상환됐다. 이는 태영건설과 한백종합건설·성전건설·상명건설·부강건설 등이 책임 준공 의무를 부담하는 사업장이었는데 마지막 발행인 9월 당시 금리는 11~12% 수준이었다.
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非)아파트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세사기가 급증한 가운데 주택 수 제외 등 규제도 완화되지 않으면서 이들에 대한 기피가 심해져 미분양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시행사들은 미분양을 털어내고 최소한의 마진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할인 분양을 하거나 계약금 일부를 캐시백해주는 등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올 2월 분양을 시작한 서울 강동구 ‘강동역 SK 리더스뷰’의 청약 신청이 부진하자 지난달 환매조건부 옵션을 달아 재분양에 나섰다. 지금 계약을 하더라도 입주 시점인 2026년 8월 오피스텔의 시세가 분양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사업 주체에 다시 되팔 수 있는 옵션이다. 한 오피스텔 분양 대행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서 비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실수요자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며 “금리도 공사비도 모두 올라 무턱대고 가격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투자금이든 자체 자금이든 돈을 구하지 못해 마지막까지 몰린 사업장은 결국 공매에 부쳐진다. 공매를 통해 구조조정이 되는 것 자체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으나 문제는 수차례 유찰에도 불구하고 새 주인을 찾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 경우 시행사와 후순위 투자자는 물론이고 선순위로 자금을 댄 금융기관마저 손실이 불가피해 금융기관 부실로 전이될 우려가 있다. 무궁화신탁이 공고한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의 한 사업장은 지난해 9월 미준공 건축물을 포함해 공매로 나왔으나 1년 넘게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지난해 7회, 올해 13회 총 20회나 유찰됐다. 무궁화신탁은 이달 5일 다시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 신탁 업계 관계자는 “올해 말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사업장이 많은 만큼 급등하는 금리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투자자를 찾지 못한 사업장이 줄줄이 내년 상반기에 공매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공사비와 금리 등 비용 부담이 커진 만큼 신규 사업에 뛰어드는 사업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