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30일 출시된 대화형·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인간만이 가능했던 콘텐츠를 생성하면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출시 2개월 만에 매주 1억 명의 활성 사용자 기록을 달성했으며 불과 1년 만에 글쓰기·프로그래밍·금융·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지난달 17일 챗GPT 개발·운영사인 오픈AI의 이사회는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을 이사회와 솔직한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하면서 테크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올트먼이 마이크로소프트(MS) 내 AI 연구팀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하고 뒤이어 오픈AI 직원 대부분이 그를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오픈AI는 5일 만에 그를 복귀시켰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AI가 방치되면 인류에게 실존적 위험을 초래한다고 믿고 규제를 옹호하는 비관론자(doomer)와 AI가 만들어낼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경시하고 발전 가능성을 강조하는 성장론자(boomer)의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철학적으로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와 효과적 가속주의(effective accelerationism)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전자는 증거와 이성을 사용해 세상을 개선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결정하는 철학임에 반해 후자는 기술 진보를 가속화해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철학이다.
AI에 대해 효과적 이타주의는 AI 개발을 윤리적이고 안전하게 진행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인류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기술을 이끌고자 한다. 효과적 가속주의는 기술 발전을 가속화해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며 윤리적 고려보다는 변화의 속도와 규모에 더 중점을 둔다. 결국 올트먼의 복귀는 성장론자와 효과적 가속주의의 승리, AI 이상주의에서 실용주의로의 변화, AI 자본가 승리라는 논평이 이어졌다. 다만 올트먼은 두 그룹 모두에 공감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AI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가드레일’을 요구하는 한편 오픈AI가 더 강력한 모델을 개발하도록 압박하고, 사용자가 자신만의 챗봇을 구축할 수 있는 앱 스토어와 같은 새로운 도구를 출시하도록 촉구했다.
어쨌든 AI 실용주의가 산업적으로는 우위를 가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규제 기관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행정명령이나 AI 안전정상회의 등 안전한 AI를 위한 규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되고 있으며 후발 AI 강국을 꿈꾸는 한국도 비슷하다. 아직 혁신 성과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학습 데이터에 대한 저작권, 개인정보 관련 이슈에 대해 혁신 친화적인 입장에서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타주의와 가속주의가 각각 대표하는 규제와 혁신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AI 개발에 있어서 윤리적 고려, 장기적 영향 평가, 증거 기반 접근은 규제의 핵심 원칙으로 AI의 변혁적 잠재력이라는 혁신의 원칙과 결합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이는 AI 기술이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를 극대화하면서도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가와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른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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