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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바보 호랑이의 해학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우리 전통문화에서 호랑이는 힘과 용맹을 상징해 산신(山神) 혹은 산군(山君)으로 추앙됐다. 호환(虎患)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지만 우리 전통 도자기에 묘사된 호랑이는 사나운 맹수의 모습보다는 익살스럽고 정감 가는 동물의 형상을 띠고 있다. 사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설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은혜를 갚는 동물이자 효자를 지켜주는 영특한 동물이며 민담에서는 곶감을 무서워하는 어리숙한 동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무서운 맹수지만 간교하지 않고 우직함이 있는 동물로 인식돼왔기에 조선시대 민화와 도자기에 그려진 호문(虎紋)은 언제나 친근하고 해학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철화 호랑이 백로문(虎鷺紋) 항아리에는 우리 전통문화 속에 깊이 스며 있는 호랑이에 대한 친근한 정서가 간결하면서도 호방한 필치로 잘 표현돼 있다. 단군신화에서 사람이 되고자 한 두 동물 중에 하나이며 풍수에서는 우백호로 등장하고 까치호랑이 그림에서는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지닌 동물이 호랑이다. 그런 호랑이가 도자기의 둥근 표면 위에서 귀엽고 익살스러운 자태를 띠고 있는 것은 이 동물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영물(靈物)이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 도자기 문양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자유로움과 상상의 혼합체다. 크고 작은 갈색의 선들이 모여 순박한 인상의 호랑이 얼굴이 만들어지고 짙고 엷은 철화 안료의 농담은 호랑이 특유의 줄무늬 문양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격식과 실사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함과 정감이 가득한 우리의 전통 호문은 옛이야기 속 호랑이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도자기를 보고 있자면 순박한 호랑이 한 마리가 우리 삶에 들어오는 듯 따스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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