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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수원에 필요한 30년 전 '그 말' [서재원의 축덕축톡]

■'명가' 자존심 회복하려면

이건희의 1993년 '신경영 선언'

글로벌 삼성으로 성장 밑거름

같은해 창단 결정…명문 발돋움

무능·무관심에 '2부 강등' 치욕

재건 의지 필요…"그룹이 나서야"

2일 강등이 확정된 프로축구 수원 삼성 선수들이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염기훈 수원 삼성 감독 대행이 2일 강등 확정 직후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슬퍼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호텔. 전 세계 수백 명에 달하는 삼성 임원을 불러 모은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선언을 했다.

이 회장은 그룹 전체에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했고 그의 한 마디는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신경영 선언(프랑크푸르트 선언)’ 30주년을 맞은 올해 이 회장이 직접 창단을 지시한 프로축구 수원삼성축구단(이하 수원)은 K리그1 최하위로 시즌을 마쳐 2부 리그(K리그2)로 강등되는 치욕을 맛봤다.

수원의 창단도 신경영 선언과 맥을 같이한다. 1993년 축구단 창단을 결단한 이 회장의 지시 아래 수원은 2년 뒤인 1995년 탄생했다. ‘일등주의’를 표방한 삼성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리그 우승 4회, FA(축구협회)컵 우승 5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등 수많은 우승컵을 수집하며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레알 수원’ ‘돈성’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다른 구단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했으나 이 회장이 경영 전면에서 물러난 뒤 점차 힘을 잃었다. 구단의 관리 주체는 2014년부터 삼성 산하 마케팅 회사인 제일기획으로 넘어갔고 모기업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조금씩 순위가 추락했다. 결국 수원은 창단 28년 만에 2부 강등의 굴욕을 피하지 못했다.

수원의 몰락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단순히 모기업의 무관심과 예산 감액이 원인은 아니다.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 수뇌부의 무능과 무책임, 지난해 승강 플레이오프를 경험했음에도 이를 교훈 삼지 않은 실무진, 강등 위기에도 팀 분위기를 흐린 일부 선수들의 추태 등 굳이 이유를 꼽자면 한둘이 아니다.

강등은 현실이자 과거의 일이 됐다. 이제 미래에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시점에서 30년 전 이 회장의 강력한 한 마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수원을 지도했던 한 감독은 “다 바꿔야 한다”며 “수뇌부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은 물론 부서 책임자들의 성과를 면밀히 분석해 좌천이든 보직 변경이든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감독은 “4년 전 제주 유나이티드가 강등됐을 때 SK그룹이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9년 강등된 제주는 당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지시 아래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보통 축구단 대표이사로 상무급이 가던 관례를 깨고 한중길 본사 전무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전 체제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던 이들을 좌천시켰을 뿐만 아니라 프로축구에서 경험이 풍부한 김현희 단장을 영입해 본격적인 쇄신에 나섰다. 승격 경험이 두 번이나 있는 남기일 전 감독을 선임하는 등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싹 바꾼 제주는 강등 1년 만에 K리그1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수원에는 아직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대표와 단장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현 체제에서 새 감독 선임과 새 시즌 준비를 하고 있다”며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선 그룹 차원에서 정확한 경영 진단이 필요하다”며 “진단과 함께 구단 내 모든 것을 바꾸려는 의지가 없는 한 수원을 K리그1에서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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