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상가 경매가 10년 만에 최대를 기록한 것은 고금리에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소유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집값 상승기에 ‘영혼까지 끌어 모아’ 산 아파트나 불황에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상가들이 대거 경매로 넘어가며 경매 물건은 쏟아지고 있지만 낙찰률은 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연말로 갈수록 신규로 경매를 신청하는 물건들이 급증하고 있어 내년에는 경매시장의 ‘우울한 활황’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7일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경매 낙찰률은 37.9%로 2년 전(52.9%)보다 크게 하락했다. 10건의 아파트가 경매에 부쳐지면 3건만 새 주인을 찾는다는 얘기다. 서울의 상황은 더 심각해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률은 28.5%로 20%대로 내려앉았다. 높은 금리에 투자자들 역시 옥석 가리기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은 104.2%에서 80.8%로 낮아졌다. 겨우 새 주인을 찾더라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헐값에 낙찰되는 것이다. 감정가가 34억 원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전용면적 94㎡는 네 차례 유찰 끝에 전날 14억 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41%다. 선순위 세입자 전세보증금 16억 원을 고려하면 시세(36억 원)보다 6억 원가량 저렴한 30억 원에 팔린 셈이다. 주요 입지에 선호도가 높은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세가 내리며 유찰이 반복된 끝에 겨우 낙찰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송파구 신천동 ‘장미’ 전용 196㎡ 경매 물건은 감정가(30억 6000만 원)보다 7300만여 원 많은 31억 3313만 원에 지난달 낙찰됐다. 경매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재건축 단지이지만 낙찰가율이 100%를 겨우 넘겼다. 수개월 전만 해도 재건축이 진행되는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120%대에 달했다. 영등포구 도림동 ‘브라운스톤영등포’ 전용 85㎡ 역시 한 차례 유찰된 뒤 지난달 6억 4240만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은 96.9%다. 1기 신도시특별법 수혜가 기대되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무지개마을’ 전용 85㎡는 7억 8000만 원에 낙찰돼 그나마 낙찰가율이 113%를 기록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서울 주요 입지 아파트의 경우 호가보다 10% 낮은 양호한 낙찰가를 보이고 있지만 서울 외곽과 경기 지역은 호가보다 15% 내려온 금액에 속속 낙찰되고 있다”며 “입찰자들도 고금리에 자금 조달이 상대적으로 쉬운 소형 평수에 몰리며 대형 평수에 대한 낙찰가율이 더 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빌라·오피스텔 경매 물건도 급증했다. 지난달 전국 오피스텔 경매 진행 건수는 984건으로 2년 전(706건)보다 28% 늘었고 빌라는 1899건에서 3618건으로 90% 증가했다. 반면 낙찰률은 오피스텔과 빌라가 각각 16.9%, 17.1%로 바닥 수준을 보였다. 낙찰가율은 60%대에 그쳤다. 빌라와 오피스텔은 실거주보다는 투자 목적의 입찰자가 많다. 전세사기 여파에 전세 기피 현상이 심해지면서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 탓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올 1~10월 서울 빌라 전세 거래량은 5만 7718건으로 전년(7만 6317건) 대비 24.3% 감소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빌라 역전세 탓에 낙찰을 받으면 오히려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금액이 더 많은 ‘마이너스 낙찰’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최소 내년까지는 빌라 전세 기피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상가도 고금리·고물가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전국 상가 경매 진행 건수는 1584건으로 2년 전(866건)보다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낙찰률은 18%, 낙찰가율은 50%대까지 내려왔다. 소비 침체에 공실은 치솟는데 고금리를 버티지 못한 물건들이 경매로 나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중대형 상가 투자 수익률은 지난해 3분기 1.32%에서 올 3분기 0.65%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소규모 상가도 1.20%에서 0.59%로 하락했다.
내년에 경매에 부쳐지는 물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 신규 아파트 경매 신청 건수(경매 개시 결정일 기준)는 9월 122건에서 지난달 162건으로 늘었다. 현재 강남구 ‘대치우성’, 송파구 ‘잠실엘스’,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등에 대한 감정 평가가 진행 중이다. 이들 단지는 수요가 높아 보통 매매시장에서 소화되지만 최근 들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경매시장에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아실에 따르면 강남구 아파트 거래량은 8월 273건에서 10월 134건으로 절반가량 감소했다. 같은 기간 송파구는 272건에서 146건으로, 마포구는 176건에서 82건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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