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계기가 됐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사망 사고와 관련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이 회사 대표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2부는 7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부발전 법인 역시 김 씨와의 실질적 고용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산업 현장의 안전 조치 미비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원청 대표까지 형사책임을 묻는 중대재해법의 문제점을 보여줬다.
노동계는 “노동자·시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대법원을 규탄한다”며 “왜 중대재해법이 필요한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사고 당시 중대재해법이 있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법 시행에도 적용 대상 사업장의 사망자 수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중대 재해 발생 건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에 머물렀다. 과잉 규제와 처벌 중심의 산업재해 예방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반증이다. 더구나 대법원은 김 씨 업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원청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유죄를 확정했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중대 재해와 관련해 처벌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는 얘기다.
중대재해법은 국회의 입법 논의 때부터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한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의가 아닌 사고에도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데다 관련 규정이 모호한 탓이다.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보니 법적 대응에만 급급해 정작 안전 관련 투자는 소홀하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정부와 국회는 중대재해법 제정 취지는 살리되 사용자와 원청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등 관련 법 보완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제재 방식을 형사처벌에서 경제적 처벌로 전환하고 기업들이 산재 예방 투자를 늘리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또 제도 정비 이전까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기업도 ‘안전한 일터’가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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