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전이 모두 ‘레미제라블’에 담겨 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 신데렐라, 파우스트 등 명작의 이야기가 모여 있어 전 세계 관객들이 이에 대해 공감할 수 있죠.”
8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뮤지컬 ‘레미제라블’ 연출가 제임스 파월(61)은 이 작품의 흥행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레미제라블’은 최근 공연예술통합전산망 기준 뮤지컬 부문 예매율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 절정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실력이 뮤지컬의 힘을 빛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난 1985년 프랑스 작사가 알랭 부블리와 작곡가 클로드 미셸 숀버그, 영국 출신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가 영극 웨스트엔드에서 힘을 합치면서 탄생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 세계 53개국 1억 3000만 명이 관람한 장수 뮤지컬로 거듭났다. 파월은 1996년 처음으로 이 작품의 상주 연출 제안을 받은 후 30년 가까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프로덕션의 연출을 맡아온 인물이다.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난 파월은 젊은 시절 배우로 활동했다. 1992년 영국에서 공연 중인 ‘레미제라블’에 17번의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된 후 댄스 캡틴(배우 중 안무를 리드하는 역할)를 지낸 그는 4년 후에는 상주 연출 제안을 받게 됐다. 이후 그는 25주년 기념 공연을 이끌면서 ‘레미제라블’의 오리지널 프로덕션 연출을 과감히 바꾸는 역할을 맡았다. 이로 인해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상징이었던 ‘회전 무대’가 사라졌고, 3시간이 훌쩍 넘었던 공연 시간도 짧아졌다.
파월은 특히 ‘코제트’의 인물 변화를 오리지널과 25주년 기념 프로덕션을 가르는 중요한 변화라고 꼽았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코제트’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소프라노에 한정되어 캐스팅됐다. 파월은 그런 코제트의 캐릭터성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코제트는 팡틴의 딸이잖아요. 팡틴은 엄청난 의지와 힘을 가진 인물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사랑을 안고 있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코제트에게 밝은 색 드레스를 입히고 긍정적인 인물로 재정비하려고 했습니다.”
오리지널 공연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오프닝 장면은 ‘예상치 못한’ 신선함을 가져다 주었다. 장발장이 감옥에서 혹독한 노동을 하는 오프닝 장면에서 죄수들이 바위를 쪼개는 대신 배의 노를 젓는 이미지를 상상한 것. 오로지 음악을 들으면서 떠올린 이 이미지는 오프닝에서 구체화됐는데, 이후 작곡가 숀버그에게 “내가 작곡할 때 상상한 이미지와 꼭 같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2013년 초연한 한국 라이선스 ‘레미제라블’ 뮤지컬은 파월이 연출한 새로운 프로덕션을 기반으로 한다. 작품은 2015년 재연과 올해 부산 공연을 거쳐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막을 올렸다.
파월은 “한국 배우들은 ‘레미제라블’ 속 인물들이 고난에 맞설 때마다 이러한 감정을 잘 이해해 깊이 있게 연기한다”면서 “노래할 때는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노래해 소리가 매우 좋다는 게 독특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장발장’을 맡은 배우들은 “들어본 목소리 중 가장 성대가 좋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파월은 한국 관객의 열정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전했다. 그는 “한국 공연이 결정된 후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을 할 때 한국 관객이 미리 런던 프로덕션을 보기 위해 찾아오더라”라면서 “한국 관객은 젊고,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많다. 업계에서는 레미제라블뿐 아니라 한국에서 다른 뮤지컬 작품도 공연할 수 있기를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레미제라블’의 법칙을 새로 만든 지난 여정에 대해 “번지점프 같다”고 표현한 파월. “오리지널이 인기가 많아 추락할 공간도 깊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그는 ‘레미제라블’의 밝은 미래를 그렸다. “오리지널을 존중하면서 우리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계속 발전해야 작품은 무미건조해지지 않아요. ‘레미제라블’은 영원히 진화할 겁니다.” 공연은 내년 3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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