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중앙은행들이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된다. 40여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던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두 경제권에서 모두 둔화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7일(현지 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내년 3월 기준금리가 현재 수준(5.25~5.5%)보다 낮아질 확률은 58.4%다. 선물 시장은 금리 인하 시점을 내년 3월로 본다는 의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중장기적으로 물가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국채 수익률에 녹아 있는 향후 5년 평균 기대인플레이션(브레이크이븐 레이트·BER)은 2.06%를 기록했다. 2021년 1월 12일(2.06%) 이후 2년 11개월 만에 최저치다. BER은 국채 수익률에서 만기가 같은 물가연동채권(TIP)의 수익률을 뺀 값으로 해당 기간의 평균 인플레이션 전망을 나타낸다. 도널드 러스킨 트렌드매크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제 물가는 디플레이션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이를 알고 있다”며 “내년 1분기에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전망과 달리 경제학자 10명 중 9명 이상은 인하 시기를 내년 2분기 이후로 보고 있다.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산하 켄트A클라크글로벌마켓센터가 1~4일 경제학자 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응답은 △1분기 5% △2분기 33% △3분기 33% △4분기 15% △내후년 이후 15%였다. 로버트 바베라 존스홉킨스대 금융경제학 센터장은 “연준은 금리 인하를 고려하기 전에 인플레이션과 노동 수요의 꾸준한 개선을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가 연준보다 먼저 이뤄질 수 있다. ECB가 이르면 내년 3~4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90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1~6일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7%(51명)가 내년 7월 ECB 통화정책회의 전에 최소 한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조사만 해도 내년 중반까지 금리 동결을 보는 경제학자가 55%였지만 한 달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골드만삭스도 이날 투자자 메모에서 “유로존에서 인플레이션 완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며 “성장 전망과 지속적인 임금 상승, 기저 인플레이션의 둔화를 보여주는 여러 데이터를 고려할 때 내년 4월에 (ECB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내년 3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골드만삭스의 지적대로 유로존의 물가 상승세는 최근 빠르게 꺾여 ECB의 목표치인 2%에 다가서고 있다. 지난달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4%에 그쳐 2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ECB에서 가장 매파적으로 꼽히는 이자벨 슈나벨 집행이사가 “11월 CPI로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다소 낮아졌다”고 발언하며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졌다.
기대감은 국채금리에도 반영됐다. 이날 유로존 장기금리 벤치마크인 독일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2.16%까지 떨어져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영국도 이르면 내년 상반기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가능성이 점쳐진다. 다만 10월 CPI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4.6%로 집계되는 등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유로존·미국보다 덜해 그 시기도 비교적 늦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정보 업체 LSEG에 따르면 시장에서 영국중앙은행(BOE)이 6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을 70%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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