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계 중심으로 꼽히는 3선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 내 ‘인적 쇄신’의 불을 지폈다. 미완으로 끝난 혁신위원회의 ‘주류 희생안’이 다시 힘을 얻을 계기를 마련하며 김기현 대표 등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의 거취 표명 기한도 한걸음 앞당겨진 모양새다. 김 대표의 선택지를 놓고 여러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여당의 총선 셈법도 복잡해졌다.
이날 정치권에 따르면 김 대표는 이르면 13일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장 의원이 내년 4월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면서 김 대표의 정치적 시계도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초 이번 주중 공천관리위원회를 띄워 본격적인 ‘선거 모드’를 위한 이벤트 성격으로 김 대표의 거취 표명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그 시점이 1~2주 앞당겨진 것이다. 13일 예정돼 있던 정책의원총회가 취소된 점도 김 대표의 거취 표명과 맞물린 결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김 대표가 14일 최고위원회를 주재하는 모습은 굉장히 어색할 것”이라며 “그 이전에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김 대표를 여당의 수장으로 올린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의 한 축이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의 뒤편에서 국민의힘 총선 승리를 응원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한 배경을 설명했다.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요구한 ‘지도부, 영남 중진, 친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혁신안에 화답한 것이다. 장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보다 절박한 게 어디 있겠나. 총선 승리가 윤석열 정부 성공의 최소 조건”이라며 “또 한 번 백의종군의 길을 간다. 이번에는 마지막 공직인 국회의원직”이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의 이러한 결정은 김 대표에게 여러모로 부담이다. 특히 내년 총선의 공천에서 막강한 실권을 쥔 공천관리위원장 선임을 마무리 짓는 모습은 “당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당내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 대표의 향후 행보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는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자신의 지역구인 ‘울산 남구을’로 하방하는 것이다. 내년 국회의원 출마를 공식화했던 서동욱 울산 남구청장이 전날 돌연 사퇴를 철회한 점도 김 대표의 ‘지역구 재출마설’에 힘을 실고 있다. 김 대표가 13일 오전 지역 시민단체가 개최한 ‘출마 종용’ 기자회견에 참석해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는 설도 파다하다. 다만 이 경우 “선당후사 정신이 실종됐다”는 당내 비난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가 물러난 뒤에는 윤재옥 원내대표가 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거나 비대위원장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윤 원내대표의 직무대행설은 총선이 120일 남은 만큼 비대위를 꾸리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이에 김 대표의 사퇴를 요구해온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당 총의로 비대위원장을 추대하면 된다”며 “다른 최고위원들은 자동적으로 비대위원으로 재추대하면 하루면 상황 정리가 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한 뒤 총선을 지휘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전날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이 모인 텔레그램에서는 10여 명의 초선·영남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김기현 체제 유지’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 뒤 분위기 반전의 기류가 감지된다. 여당의 한 의원은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텔레그램 방에서 단결을 외치던 의원들이 조용해졌다”며 “장 의원의 불출마는 용산의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봐야 하는 이상 다들 눈치보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은 장 의원의 갑작스러운 불출마 선언 및 김 대표의 거취 고민의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감안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장 의원은 앞서 혁신위가 당 주류에 대해 불출마나 험지 출마의 희생을 요청했을 당시만 해도 지역구에서 대규모 인원을 동원한 행사에 참석, 지지세를 과시해 혁신안 거부 입장으로 해석됐던 상태였다. 그랬던 장 의원이 이번에 희생 결단을 내린 것에는 친윤계 주류의 희생 없이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율 및 여당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여권의 고민이 반영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김 대표 역시 최근까지도 사실상 대표직 고수 등의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번에 잠행을 하며 거취 고민을 하는 것 역시 최근 자신과 공개 식사를 해 힘을 실어준 윤 대통령의 심중을 다시 헤아리려는 차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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