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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현장도 준비 안된 중대법…유예 불발땐 '행정마비' 불보듯

■내년 확대시행 앞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90만곳으로 12배 늘고

사망산재 70% 中企서 발생하는데

野는 예방사업 등 예산 증액 없이

정부에 기업 안전지원 대책만 주문

"이대론 감독·수사 현장수요 못맞춰"





경기 시흥시 시화국가산업단지 곳곳에 공장 매매·임대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시흥=오승현 기자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 50억 원 미만)까지 확대 시행될 경우 현장은 물론 정부도 행정 대응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대재해가 극적으로 줄지 않는 상황에서 중대재해 예방 감독과 법 위반 수사는 현 적용 사업장만으로도 사실상 적체 현상을 빚고 있다. 이 상황 개선 없이 내년 중대재해법이 확대 시행된다면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를 처벌해 중대재해를 감축하겠다는 법 취지까지 작동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정부 등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이행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법 관련 내년 주요 사업은 올해 예산보다 줄거나 정부 자체 예산 심의 과정에서 고용부안보다 감액된 안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내년 1조 4500억 원 규모 산재 예방 지원 사업의 약 33%를 차지하는 ‘클린사업장 조성 지원 사업’은 올해 본예산이 5069억 7400만 원이었다. 하지만 국회에 제출된 내년 예산안은 정부 조율 후 약 7% 줄은 4717억 9200만 원으로 2022년(4509억 원) 수준이 됐다. 이 사업은 내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후·위험 공정 개선 지원을 위한 안전동행 지원 사업(3220억 원), 유해 위험 요인 시설 개선(957억 원) 등으로 구성됐다. 내년 중대재해법 신규 적용 대상 사업장 지원의 핵심인 셈이다.

고용부 예방 사업의 다른 축인 ‘산재 예방 시설 융자사업’ 국회 제출안은 4586억 4000만 원으로 올해보다 약 29% 증액됐다. 하지만 이 사업은 50인 미만 사업장뿐만 아니라 300인 미만 사업장 전체가 지원 대상이다.



여기에 중대재해법 관련 간접 예산도 줄었다. ‘근로감독 역량 강화’는 고용부안이 168억 6100만 원이었지만 국회 제출안은 129억 8000만 원으로 감소했다. ‘산업안전 역량 강화’도 43억 7800만 원에서 22억 8200만 원으로 절반가량 줄어 국회에 제출됐다. 근로감독 역량 강화는 근로감독관 지원이 목적이지만, 근로감독 업무가 과부화 상태인 데다 중대재해 수사 강화와 일선 현장 인력 협업 등을 위해 늘 증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중대재해법 수사를 담당하는 산업안전감독관 예산이 정부안보다 약 50% 줄어 국회에 제출된 게 우려를 키운다. 이 사업은 산업안전감독관 역량 강화와 수사 여건을 개선하기 때문이다.

내년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을 두고 중소기업계는 준비 여력이 부족하다며 국회에 제출된 2년 시행 유예 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 논의 뒷전에 있는 고용부의 행정 능력도 상당한 우려를 키운다. 고용부는 지원 사업, 현장 점검 등을 통해 중대재해를 감축해야 하는 동시에 중대재해법 위반 수사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중대재해가 지난해보다 감소한 배경에도 감독관들의 현장 행정 강화가 주효했다는 게 고용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수사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올해 10월 26일까지 중대재해법 적용 사건 456건 가운데 검찰 수사는 약 19%(86건)만 이뤄지고 있다. 검찰 수사는 고용부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해야 이뤄진다. 고용부가 검찰 수사 사안이 아니라고 내사종결한 50건을 고려하더라도 수사 속도가 늦다는 지적이다. 검찰 수사도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중대재해법 재판은 12건(1심 11건)에 그치고 있다. 내년에는 이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약 7만 1000곳인 중대재해법 적용 사업장은 내년 약 12배나 급증한 약 90만 곳이 된다. 게다가 매년 전체 사망 산재 사고 중 약 7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다.

문제는 고용부가 내년 예산을 급격하게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중대재해법 2년 시행 유예안의 키를 쥔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에 2년 유예 시 ‘확실한 기업 지원 로드맵 마련’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은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내년 고용부 예산에 청년취업 진로 및 일 경험 지원 사업은 전액 삭감하고 산재 예방 지원 사업 증액을 의결하지 않았다. 현 국회 상황을 고려하면 남아 있는 내년 예산안 최종 심의 과정에서 산재 예방 지원 사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노동계는 중대재해법 시행을 다시 유예하면 법 형해화가 일어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고용부는 한정된 재원 아래 내년 중대재해법 신규 사업장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정부 지원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현장 수요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이날 중소기업과 간담회를 열고 “정부 노력에도 중소사업장에서 체감하는 지원 효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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