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발생하는 곳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어린이다. 5년 가까이 지속된 2차 세계대전 중에 희생된 7500만 명 중 절반을 넘는 4000만 명이 민간인이었다. 이 가운데 어린이의 비중도 매우 컸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600만 명 가운데 150만 명이 어린이였다는 사실이 그 피해 규모를 추산하게 해준다.
전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어린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고아가 된 아이들만 문제가 아니었다. 모질게 살아남아 낯선 곳에 정착한 어린이들은 강추위와 무더위, 잠자리와 식량 결핍, 옷과 의약품 부족으로 상시적 고통을 겪었다. 세상에 내던져진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은 나치 전범 재판보다 더 시급한 전후 처리 과제였다. 이를 위해 1946년 12월 11일 국제연합의 우산 아래 국제아동긴급기금이 설립됐다. 유럽에서 전후 복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1953년 이 기구는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으로 이름을 바꿨다. 전 세계로 활동 지역을 넓혀가기 위해서였다. 긴급 구호에 집중됐던 초기 유니세프의 과제는 점차 적절한 수준의 영양 공급과 예방 접종, 식수 문제와 환경 개선, 기초 교육 증진으로 확대됐다. 공로를 인정받아 1965년에는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유니세프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이 땅에서 시작된 긴급 구호 사업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더불어 상설 구호 사업으로 확대됐다. 이후 1993년까지 우리는 약 40년 동안 나병과 폐결핵 의약품을 포함해 여러 분야에서 도움을 받았다. 1994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과 유니세프의 관계는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2017년에는 서울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됐고 현재 100명을 훨씬 넘는 한국인이 유니세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니세프의 존재는 비상시에 빛을 발한다. 가자지구에서 분쟁이 발생한 후 유니세프는 실시간으로 피해 상황을 알리며 100만 명이 넘는 어린이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