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등 강남 학군지를 중심으로 애초부터 고등학교 진학 대신 검정고시를 치는 것이 좋을지 문의하는 중3 학부모들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복수 입시 업체 관계자들)
저출산 여파로 학령인구는 해마다 줄고 있지만 등교 대신 검정고시를 택하는 10대(만 13~19세)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히 학교 부적응 학생의 증가 때문이 아니라 정시 전형 확대와 의대 열풍, 재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내신 시험의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교육계 분석이다. 수업이나 내신 관리에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는 처음부터 수능에만 전념하는 것이 대입 준비에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학생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오로지 대입만을 위해 공교육을 외면하고 교육을 수단시 하는 것은 교육 가치를 훼손하는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새 대입제도가 도입되기 직전인 2027학년도 대입까지 이러한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18일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고졸 검정고시에 응시한 10대 응시자는 3만 45명으로 역대 최대다. 2019년과 2020년에는 각각 2만 9659명, 2만 9706명으로 3만 명에 근접했다가 2021년 2만 4498명, 2022년 2만 5329명으로 뚝 떨어진 후 올해 다시 크게 증가했다.
10대 응시자 비율은 2019년 67.7%에서 올해 74.8%로 무려 7.4%포인트 증가했다. 50대(만 50~59세) 응시자가 2019년 3405명에서 올해 1763명으로 절반가량 감소하는 등 중장년층 응시자가 줄어든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교육부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중장년층의 전반적인 학력 수준이 올라가면서 응시자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10대 응시자도 전반적인 학령인구 감소세를 고려하면 오히려 더 줄었어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오히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교육계는 학교 부적응 학생 증가뿐 아니라 최근의 정시 확대 기조 등이 10대 응시자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학교 생활 적응이 힘든 부적응 학생이 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입제도가 바뀌는 등 정책 전환기에 교육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혼란이 생겨나기도 한다”고 짚었다.
교육부는 2019년 학생부종합전형(학종)·논술 비중이 높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에 2023학년도까지 수능 전형 비중을 40%까지 높일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학종에 대한 불공정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시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자 시행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2021학년도 29% 수준이었던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 비중은 2023학년도 기준 40%로 확대됐다. 특히 ‘의대 열풍’까지 불면서 수능을 여러 번 치르는 ‘N수생’이 증가하는 등 수능의 위상은 더욱 강력해졌다.
더욱이 수시 전형에서는 내신 성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최상위권 대학을 노리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한 학기만 시험을 망쳐 좋지 않은 점수를 받아도 사실상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분위기가 짙다. 내신은 수능과 달리 재수가 없기 때문에 몇 번만 삐끗해도 최상위권 대학 진학에 필요한 성적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와 달리 일반고의 경우 대개 수시 전형 위주로 학습하는 분위기여서 내신을 망친 학생이 수능만 온전히 준비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반면 고1 단계에서 검정고시를 마무리한 뒤 곧바로 그해에 수능을 치르면 다른 학생들이 고3이 돼서야 칠 수능을 세 번까지 치를 수 있다.
실제로 학원가에서는 고등학교 진학 대신 검정고시 응시를 문의하는 학부모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최근 들어 검정고시 응시를 고민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며 “오로지 정시만 노린다면 효율적일지 모르겠지만 수시에서는 사실상 지원이 어렵다 보니 대입 선택권 면에서 불리하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정고시 응시를 말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실제 수능에서 검정고시생의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수능에서 검정고시생은 전체의 3.6%인 1만 8200명이다. 이는 1995학년도 수능(5.4%)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기록이다. 1995학년도의 경우 당시 학교 내신 평가 방식이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전환돼 외고생이 내신에서 불리해진다며 ‘집단 자퇴’ 파동을 일으켰던 특수한 시기였다.
입시 업계는 내년부터 치러지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서 이러한 ‘수능 올인' 경향이 더욱 짙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게다가 새로운 입시제도가 적용되는 2028학년도 직전 대입까지 필사적으로 수능에 도전하려는 학생들이 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028학년도 대입 개편 직전인 2027학년도 대입을 치르게 되는 현재 중3들의 선택을 주시해야 한다”며 “교육 당국은 내년도 고등학교 1학기 종료 시점에 학생들의 자퇴 상황을 빠르게 점검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학생들이 내신을 망치더라도 수능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학교에도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대입을 위해 교육을 수단시하는 현상은 바로잡을 필요는 있다”면서도 “무리하게 보완하려다 또 다른 혼란을 줄 수도 있는 만큼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심층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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