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 시한으로 잡은 20일 최종 합의를 이뤘지만 해마다 계속돼온 ‘뒷북 처리’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올해 역시 이미 법정 시한(12월 2일)을 훌쩍 넘긴 데다 ‘시트 작업’에도 1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돼 결국 다음날인 21일 예산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해온 ‘선심성 예산’이 상당 부분 반영되면서 여당이 야당의 독주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민주당이 예산안 합의 불발 시 단독으로라도 수정안을 밀어붙이겠다고 압박하자 처리 시한에 쫓긴 국민의힘이 이들의 주장을 마지못해 수용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야당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또다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하는 등 의석수를 앞세운 독주를 가속화하지만 국민의힘이 당 대표 공백으로 좀처럼 당력을 결집하지 못하면서 정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여야가 합의한 2024년도 예산안에는 이른바 ‘이재명표’ 사업으로 불리는 항목들이 포함됐다. 3000억 원이 새로 반영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을 위한 예산은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단계 때부터 여당이 강하게 반발한 항목이었다. 정부가 앞서 예산안에 편성하지 않은 항목을 야당 행정안전위원들이 일방적으로 신설하자 여당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주문한 하명 예산이자 대표적인 포퓰리즘 예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여당은 또 민주당이 요구해온 새만금 개발 지원 예산 증액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전날까지 여야가 이 같은 쟁점 항목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20일 본회의 직전까지 예산안 합의가 불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단독으로 수정안을 의결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속적인 협의 끝에 최대 쟁점이던 연구개발(R&D) 예산 증액에 대해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삭감분을 활용해 일부 복원하는 식으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막판 타결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했다.
반면 ‘이재명표’ 선심성 예산에 대해서는 합의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종 합의안에는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 3000억 원 반영됐고 새만금 개발 지원을 위한 예산도 3000억 원이 증액됐다. 새만금 예산에 대해 여야는 합의문에서 “입주기업의 원활한 경영활동과 민간 유치를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증액 배경을 밝혔다.
합의문 발표 후 윤재옥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정부안에서 증액하지 않는다는 일관된 원칙을 갖고 협상에 임했으며 지역화폐 예산, 새만금 예산 등 쟁점 예산은 적정한 선에서 양보와 타협을 했다”고 설명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당 입장에서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 미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만큼 최선의 협상을 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민의힘의 이번 결정에는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 지각 처리’가 될 수 있다는 압박과 함께 각종 정치적 현안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이달 28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 이른바 ‘쌍특검’과 함께 해병대원 순직사건 국정조사 등 처리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안을 놓고 28일까지 여야가 대치를 이어가는 것이 여당 입장에서도 무리가 될 뿐더러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의 사퇴로 야당의 독주에 대응할 당력도 떨어진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국민의힘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비상대책위원장 인선에 몰두하고 있지만 당 안팎에서 설왕설래가 지속되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혼란을 틈타 이날 민주당은 국회 농해수위 농림법안소위에서 국민의힘 불참 속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단독 의결했지만 여당에서는 마땅히 손 쓰지 못하는 상태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개인 채무자에 대한 금융사의 과도한 추심을 금지하는 내용의 ‘개인채무자보호법’과 내년 8월 일몰 예정인 현행법을 상시법으로 전환하고 적용 대상에 디지털 전환, 탄소 중립 등이 추가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첨단산업 인재혁신 특별법’ 등 법안들도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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