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에 있어 포드(Ford)의 비중은 상당하다. 단순히 ‘자동차 주요 브랜드’ 혹은 거대한 그룹으로 여러 족적을 남기는 것 외에도 모델 T를 통해 ‘자동차의 양산’ 그리고 나아가 ‘마이카 시대’의 진정한 개막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다양한 브랜드 활동을 펼치며 모두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로 역사를 쌓아왔고, 또 미래를 향하고 있다. 더불어 모터스포츠 부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브랜드’라 할 수 있을 여러 역사를 써왔다.
포드 모터스포츠 커리어의 시작과 같은 존재, 포드 999은 어떤 차량일까?
1902년 등장한 포드의 새로운 레이스카
포드를 설립한 ‘헨리 포드(Henry Ford)’는 자동차의 우수함을 입증할 수 있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컸고, 실제 1901년, 26마력의 성능을 내는 스윕스테이크(Sweepstakes)로 많은 활동에 나섰다.
특히 헨리 포드는 헨리 릴랜드(Henry Leland)와의 분쟁, 이별 등의 상황에서도 모터스포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고 1902년, 회사 내의 다른 엔지니어들과 함께 새로운 레이스카를 개발했다. 바로 포드 999의 등장이다.
포드 999는 특별한 형태나 구조를 갖추지 않고 말 그대로 ‘섀시’에 구동계만 장착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체는 붉은색 혹은 노란색으로만 칠해진 형태로 말 그대로 달리는 것에 집중한 형태였다.
실제 포드 999는 차체 전면에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 그리고 그 뒤에 18.9L 배기량을 가진 4기통 엔진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 형태였다. 참고로 엔진의 출력은 약 100마력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드 999는 그 형태 만큼이나 기능 역시 투박한 모습이었다. 실제 포드 999는 막대 형태의 스티어 바를 통해 조향을 할 수 있었고, 운전자를 제대로 보호하거나 고정할 수 있는 시트도 존재하지 않았다.
헨리 포드의 손을 떠났던 999
헨리 포드가 만든 레이스카지만 999는 곧바로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갔다. 바로 레이서 톰 쿠퍼( Tom Cooper)와 운전 경험이 아직 없었던 젊은 남성, 바니 올드필드(Barney Oldfield)가 그 주인공이었다.
둘은 999의 차체를 완전히 붉은색으로 뒤덮었고 당시 뉴욕의 고속 철도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익스프레스 999’를 차용해 레이스카에 999라는 이름을 부여해 레이스카를 완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본격적인 레이스 활동에 나섰다. 참고로 노란색의 레이스카는 ‘화살’, 즉 애로우라 불렸다.
999는 당시 미국에서 열린 다양한 레이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각종 대회에서 활약하며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1903년, 레이스 중 사고에 휘말렸고 ‘레이서’의 목숨을 앗아간 레이스카라 불리며 ‘붉은 악마(Red Devil)’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헨리 포드는 이후 다시 한 번 999와 달리기 위해 파손된 999를 구매, 수리를 했다. 이후 얼어 붙은 세인트 클레어 호수를 달리며 147.05km/h의 속도를 달성, 포드의 기술력과 999의 특별함을 알리는 ‘기회’를 갖게 됐다.
후지 모터스포츠 박물관에서 만난 999
포드 999는 후지 스피드웨이에 새롭게 개장한 후지 모터스포츠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레이스카다. 전시된 레이스카를 통해 당대의 ‘투박하고 거친 기술’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당대 999가 수상을 했던 각종 기록, 트로피 등을 함께 볼 수 있어 더욱 특별함을 자아낸다.
한편 후지 모터스포츠 박물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개관 첫해인 올해는 후뮤 없이 운영된다. 관람 가격은 평일 기준 1,800엔(평일, 성인기준 / 주말 및 공휴일 2,000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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