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 대사의 지지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선거판을 좌우할 초기 경선지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의 막무가내 정치에 질린 공화당의 전통 주류 계층과 중도층이 헤일리 전 대사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데 따른 것이다. 그의 돌풍이 계속될 경우 ‘트럼프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5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최근 실시된 508개 여론조사를 평균한 결과, 최근 중도 성향 보수층의 지지를 받으며 부상하고 있는 헤일리 전 대사의 본선 경쟁력이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더힐은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상 대결시 각각 43.4%와 45.3%의 지지율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앞섰으나 그 격차가 1.9%포인트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과 헤일리 전 대사와의 대결에선 각각 39.4%와 42.9%의 지지율을 보이며 헤일리 전 대사가 3.5%포인트 앞섰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1대1 가상 대결에서 헤일리 전 대사가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큰 격차로 우세를 보인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이에 앞서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율 상승세를 알리며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헤일리가 될 가능성은 낮지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도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율 급증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헤일리 전 대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고무된 평가가 나오는 것은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율이 공화당의 초기 경선 지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바짝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아메리칸리서치그룹이 14~20일 뉴햄프셔주 공화당 예비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 유권자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2일 공개한 여론조사(오차 범위는 ±4%포인트)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33%)과 헤일리 전 대사(29%)의 지지율 격차는 4%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들의 지지율이 오차 범위 내로 좁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조사에서 헤일리 전 대사를 공개 지지한 ‘반(反)트럼프’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의 지지율도 13%에 달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경선)는 당원만 참가할 수 있는 코커스(전당대회)와 달리 당원이든 비당원이든 누구나 등록만 하면 투표할 수 있어 헤일리 전 대사에게 ‘기회의 땅’이다.
헤일리 전 대사는 인도 이민자의 딸임에도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텃밭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하원의원을 거쳐 39세에 주지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유엔 주재 미국대사로 활약하며 외교적 경험도 쌓았다. 미 정치권은 정치적·외교적으로 확고한 보수 성향이면서도 여성과 이민자로서 대중적 확장성을 갖춘 그의 대선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왔다. 폴리티코는 “미국 역사상 첫 비백인·비남성 주지사이며 두 번째 인도계 주지사”라고 전했다. 대선 자금 흐름 또한 우호적이다. 석유 재벌 찰스 코크가 이끄는 정치 단체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은 지난달 말 헤일리 전 대사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공화당의 돈줄로 불리는 미국 재계의 대표적인 보수 인사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도 최근 헤일리 전 대사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다만 헤일리 전 대사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의 지지층이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 계층의 공화당 유권자들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앞서 “온건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네버 트럼프’의 후보는 포퓰리즘 노동계급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당을 쉽게 이길 수 있는 후보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공화당의 첫 코커스가 열리는 아이오와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50%를 넘고 있다.
한편 공화당 대선 구도가 이처럼 요동치는 가운데 민주당의 사실상 유일한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최악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NBC방송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40%에 불과했다. 이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집권 1기 3년 차 말인 2011년 12월 당시 지지율(46%)보다 저조할 뿐 아니라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19년 12월 당시 지지율(44%)에도 못 미친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현재까지 3년간 지지율 평균도 44%로 최하위 수준이다. 같은 시기 조지 W 부시(48%), 빌 클린턴(56.5%) 전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도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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