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또 한 번 승소했다. 일본 전범기업들의 소멸시효 주장을 배척한 대법원의 판단에 따른 결과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오석준 대법관)는 28일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홍 모 씨 등의 유가족이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조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 기업이 피해자 1인당 5000만 원~1억 50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홍 씨 등은 1944년 9월 일본 히로시마 미쓰비시중공업의 군수공장에 끌려가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이듬해 8월 원자폭탄 투하로 재해를 입은 뒤 귀국했다. 홍 씨 등 일부 생존자와 피해자 유족은 2013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고 같은 시기 히타치조선소 등에서 강제 노동을 한 피해자 이 모 씨도 2015년 히타치조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건의 1, 2심 재판부는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일본 기업 측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멸시효가 지나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역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 사유가 있었다는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앞서 전원합의체는 2018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한 바 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로 대한민국 내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사법적 구제 가능성이 확실해졌다고 볼 수 있다”며 “대한민국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국제재판관할권을 갖는다고 본 원심 판단에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만세를 외치며 일본 전범기업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다. 원고들을 대리한 임재성 변호사는 “히타치조선에 대한 선고로 보다 많은 일본 기업의 강제 동원 가해 사실과 법적 책임이 인정됐다”며 “대법원 소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일말의 의혹도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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