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들어 산업 현장의 법치가 차츰 확립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1월까지 파업 등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56만 357일이었다. 이는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당시 같은 기간 평균 152만 2545일의 36.8%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의 131만 6029일과 비교하면 42.6%에 불과하다. 올해 기준(1~11월) 노사 분규 지속 일수도 1건당 9일로 문 정부 때인 2018년 21.5일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또 조합원 수 1000인 이상 노조 및 산하 조직 739개 가운데 675개(91.3%)가 회계를 공시하는 등 노조 회계 투명성 확보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노동 개혁의 핵심인 노동시장 유연화는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경직된 노동시장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은 141개국 중 노동시장 유연성 부문 97위, 노사 협력 부문 130위로 모두 바닥권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외국인 투자 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리스크로 34%가 ‘고용 유연성 부족’을, 23%는 ‘경직된 근로시간제’를 각각 꼽았다. 손경식 경총 회장이 새해 신년사에서 “2024년에는 먼저 노동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장소·시간의 제약이 사라지는 등 일하는 방식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들은 엄격한 근로시간, 까다로운 채용·해고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 없이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는커녕 국내 기업들마저 해외로 떠나가게 할 수 있다. 근로시간 유연 적용,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과 함께 고용 유연성 제고와 사회 안전망 강화 등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글로벌 정글에서 한국이 생존하려면 노사 관계의 법치 확립을 가속화하고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을 통해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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