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5개 주요 방산 업체들이 올해 사상 최대 수주액을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유럽·아시아·중동 곳곳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며 각국이 군비 지출을 확대한 결과다. 특히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유럽이 재래식무기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과정에서 한국 방산 업계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년간 지상용 무기 수주액이 530% 이상 늘어 15개 업체 중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현지 시간) 자체 분석을 거쳐 록히드마틴·제너럴다이내믹스·BAE시스템스 등 세계 주요 방산 업체 15곳이 올해 상반기 총 7640억 달러를 수주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기업의 지난해 수주액이 7776억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이미 올해 6개월 동안 지난해 전체와 비슷한 수주액을 올린 것이다. FT는 지난해 수주액이 사상 최고였음을 짚으며 올해에도 기록 경신이 무난하게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방산주 강세도 수주 열기를 반영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세계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지수는 올 초 530 후반대에서 이달 27일 612.78로 약 14% 올랐다.
방산 기업들의 수주 호조는 전 세계, 그중에서도 유럽이 군비 지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군비 지출은 2021년 대비 3.7% 증가한 2조 2400억 달러로 SIPRI 집계 이래 가장 많았다. 세계 군비 지출이 증가한 것은 8년 연속으로 더는 놀라운 소식은 아니지만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유럽의 군비 증가세가 유독 두드러졌다. 유럽은 지난해 군비에 4800억 달러를 써 전년 대비 13%의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약 30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동유럽의 군비 지출 상승률은 58%에 달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 방산 업계가 상당한 수혜를 입었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비어가는 무기고를 다시 채우기 위해 재래식무기를 대거 구매했는데 여기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등 한국산 무기들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상용 무기 수주액은 2020년 24억 달러에서 지난해 152억 달러로 2년 사이 533.3% 급증했다. 절대적 금액 자체는 지난해 15개 업체 수주액의 1.96%에 불과하지만 2년간 증가 폭으로는 1위다. 한국항공우주(KAI)와 현대로템도 폴란드에서 대규모 수주를 따냈다. FT는 “동유럽 국가들의 대량 주문 덕에 한국의 무기 판매 순위는 2020년 31위에서 지난해 9위로 높아졌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방산 업체의 수주액이 내년에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해 올해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까지 터지며 중동 안보 긴장도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도 여전하다. 영국 시장조사 업체 에이전시파트너스의 닉 커닝엄 분석가는 “무기 구매는 정책 결정, 예산 확정부터 발주에 이르기까지 절차가 많아 실제 수주와 매출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수요가 매우 견고해 보여 앞으로 더 많은 (무기) 주문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단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올해의 경우 미국과 유럽 방산 업체들은 역대급 신규 수주에도 불구하고 공급난과 인력난이 겹치며 생산을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 결과 지난해 100개 방산 기업의 무기 및 군사 서비스 판매 수익은 5970억 달러로 오히려 2021년보다 3.5% 줄었다. 이에 조지프 웹스터 애틀랜틱카운슬 선임 연구원은 유럽 전문 매체 유라크티브 기고문에서 동유럽 국가들이 역내 안보를 위해 대전차 미사일, 방공망 등 무기 생산 공급망 강화에 투자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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