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칭자리…★”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서 수녀들을 유혹하려 자신의 별자리(Libra)를 읊는, 그러나 어딘가 허술한 불량배의 모습을 우리말 자막으로 옮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시스터 액트’의 번역가는 2000년대 국민 메신저였던 ‘버디버디’에서 사용되던 철 지난 말투를 떠올렸다. 이후 관객들은 의도한 구간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번역가 김수빈(36)이 작품 속에 심어 놓은 수많은 ‘말맛’ 중 하나다.
2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김수빈 번역가는 “뮤지컬 번역은 무대의 상황과 요소, 대사와 노래의 번역이 어우러져 관객의 눈과 머릿속이 함께 반짝 빛나야 한다”면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러 온 관객들이 기쁨과 슬픔을 느낄 감정의 지도를 잘 그려주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그의 전공은 원래 방송영상과였다. 그러나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뮤지컬 통역의 길로 들어선 후 ‘스팸어랏(2013)’의 한국어 대본을 맡게 되면서 그는 라이선스·내한 뮤지컬 번역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드라큘라’, ‘킹키부츠’, ‘멤피스’, ‘시카고’, ‘원스’ 등 그가 참여한 작품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별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다. 그는 2016년 뮤지컬 ‘스위니토드’로 예그린어워드 각색·번안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처음 내한공연했던 ‘시스터 액트’도 김수빈의 손을 거쳤다. 6년이 지나 국내 뮤지컬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가 판권을 구매한 후 영어 원어로 제작한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글꼴, 재기발랄하게 번역된 말장난, 참신한 ‘김수빈표’ 디자인을 통해 전달된 자막은 공연 내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김수빈은 라이선스 공연 대본, 내한 공연 자막 번역을 모두 작업한다. 그는 “공연의 특성마다 번역도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라이선스 작품의 대사를 번역할 경우 비교적 자유롭게 감정을 유도할 수 있지만, 내한 공연 자막은 관객의 피로도를 낮추고자 한정된 글자수 안에서 이국적인 정서를 직관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번역가가 연출가와 배우, 자막을 송출하는 자막 오퍼레이터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스터 액트’처럼 수 년 후 재공연되는 작품은 자막도 변한다.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2017년 초연 당시 1700장에 달하던 자막 이미지는 이번 공연에서 1500장으로 줄였다. 원작 영화가 1993년 개봉한 만큼, 폭력적이거나 시대 착오적인 가사도 수정했다. 수명이 다한 유행어도 뺐다.
“관객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비싼 값을 치르고 공연을 보러 온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공연에서 (서투른 자막으로 인해) 감정이 깨지는 일을 가장 피하려 하죠. 팍팍한 현실 속에서 위안받는 마음을 지켜드리고 싶어요.”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내년 2월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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