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최근, 영화 한 편 보기도 지갑이 빠듯한 고물가 시대. 하지만 "극장에서 봤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영화들이 분명 존재했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올해를 장식한 최고의 영화를 총정리했다.
◇1위-아동 학대→교권 추락, 사회적 문제 날카롭게 지적한 '괴물' = 이토록 시의적절한 영화가 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이자 최근 35만 관객 수를 돌파하며 일본 실사화 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한 '괴물'은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이상 행동을 목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동시에 아동 학대, 교권 추락, 가정 폭력 등의 사회적 문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들이 학교폭력을 당하는 듯한 낌새를 감지한 엄마 사오리는 아들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교로 향한다. 하지만 진실을 알면 알려할 수록 답답한 상황에 처하고. 이후 이야기는 호리 선생(에이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시점으로 바뀌며 전개된다. 이렇게 드러나는 '괴물'의 정체가 지닌 반전 또한 작품의 메시지에 큰 울림을 더한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탄탄한 서사와 故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름다운 영화 음악 또한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2위-전쟁통에도 사랑은 ing '사랑은 낙엽을 타고' = 무미건조한 시대에도 사랑은 빛난다. 제7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99% 기록, 국제영화비평가연맹 선정 올해 최고의 영화에 오르는 등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랑은 낙엽을 타고'(감독 아키 키우리스마키)는 무미건조한 도시에 놓인 두 남녀의 멜랑꼴리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 소식이 흘러나오는 헬싱키, 홀로 살아가는 안사(알마 포이스티)와 홀라파(주시 바타넨)는 누구보다도 황량한 인생을 살아간다. 가라오케에서 눈이 맞았지만 교환한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잊어버려 방황하는 홀라파. 하지만 끝내 다시금 우연을 계기로 만남을 이어가는 두 남녀의 로맨스는 불안정한 국제 정세에도 불구하고 밝게 타오른다. 몇 번의 우연과 몇 번의 불운을 섞어낸 단순한 로맨스 서사임에도 두 사람의 그다음 행보가 궁금하게 만드는 거장 아키 키우리스마키의 낭만 섞인 연출이 인상 깊다. 국내에서는 크리스마스 당일 배우 이제훈이 SNS를 통해 이 영화를 추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특별한 홍보 없이도 잔잔한 입소문을 타고 1만 관객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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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국민적 분노 일으키며 천만 영화 등극 '서울의 봄' = 1979년 12월 12일 일어난 군사 반란의 기록을 스크린에 재현한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은 전두광(황정민)을 필두로 수도에 진격한 반란군과 수도보안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이 이끄는 진압팀의 대결을 그린다. 캐릭터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꿨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를 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며 관객들이 품은 과거사를 향한 열렬한 분노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지난 27일 기준 1100만 명을 돌파한 '서울의 봄'은 올해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며 한국 영화의 낮은 완성도에 지쳤던 관객들의 기대감을 다시금 끌어올렸다. 더불어 이 영화를 통해 과거에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 그 시대를 살았던 중장년층 세대뿐만 아니라, 잘 알지 못했던 MZ 세대까지 전해져 영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오갤3'·'에어'...아깝게 3위에 들지 못했지만 '훌륭' = 제임스 건 감독이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의 오랜 인연을 청산하고 DCEU(DC 확장 유니버스)의 수장으로 합류하기 전 마지막 작품이었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가모라(조 샐다나)를 잃고 슬픔에 빠져 피폐해진 피터 퀼(크리스 프랫)이 가족 같은 '가오갤' 멤버들과 함께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특히 이때까지 '가오갤' 시리즈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연출, 위트 등의 요소들이 잘 버무려졌으며 서사에 빈 구멍 하나 없이 모든 캐릭터들의 성장기를 표현해 '가오갤' 시리즈의 대장정을 가슴 따뜻하게 마무리했다.
더불어 우리에게는 배우로 익숙한 벤 애플렉의 감독 연출작인 '에어' 또한 아쉽게 TOP3를 놓친 작품 중 하나다. 스포츠 의류 업계에서 만년 삼류 브랜드로 취급받던 1984년의 나이키가 지금의 나이키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었던 '에어 조던'의 탄생 비화를 담은 작품으로 "신발은 신발일 뿐이지. 누군가가 신기 전까지는"이라는 명언이 관통하는 모든 메시지를 전한다. 업계 관행을 뒤집는 무모한 결정이 만들어낸 기적의 결과를 박진감 있게 풀어내며 나이키가 품은 브랜드 가치의 정수를 천착하는 이야기는 에어 조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선물로 전해져 극장가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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