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총선 출마를 시사하는 문자를 고향 사람들에게 보내 물의를 빚은 현직 부장검사가 내부 진상조사에서 '정치와 무관한 안부 문자였다'고 해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 부장검사는 대검찰청 감찰위원회가 징계까지 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직후 사직서를 내고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를 피하기 위해 '거짓 해명'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사법연수원 35기)가 이른바 '명절 문자 논란'으로 검사장 경고라는 가벼운 처분을 권고받았던 데에는 김 검사의 해명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이던 올해 9월 고향인 창원 사람들에게 "저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 "지역 사회에 큰 희망과 목표를 드리겠다" 등 내용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김 부장검사는 진상조사 단계에서 '정치적 의미가 없는 안부 문자였고 총선과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 감찰위 역시 이런 해명을 고려해 징계를 청구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보고 비교적 가벼운 처분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부장검사는 감찰위 의결이 있던 28일 당일 법무부에 사직서를 내고 언론을 통해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출마를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튿날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려운 길이지만 결심은 쉬웠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제 결정에 확신이 들었다"며 내달 6일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사실을 썼다가 지운 바 있다.
이 때문에 정치적 목적으로 명절 문자를 보냈던 게 아니라는 종전의 해명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런 사실을 보고받고 크게 화를 내며 출판기념회에 대한 추가 감찰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절 문자에 대해서도 검사장 경고보다 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법무부에 징계를 청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김 부장검사는 연합뉴스에 "문자 메시지 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11월 말 정식 감찰로 전환되면서 조직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10월 초에는 정치 의사는 물론 사직하겠다는 의사도 없었으므로 10월 초에 낸 소명서가 허위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출판 기념회 준비 등은 1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고 사직하겠다는 의사 표시는 12월 초순께 했다"며 "최대한 일찍 사표를 내려 했으나 대검 감찰위가 예정돼 사직서 수리가 안 될 것이라는 전언을 듣고 기다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직 검사가 정치 활동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사례는 김 부장검사만이 아니다. 박대범(33기) 광주고검 검사(전 창원지검 마산지청장)도 총선 출마를 위해 외부인과 부적절한 접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감찰받고 있다. 박 전 지청장은 경북 성주 출신으로 대구에 오래 거주했는데, TK 지역 출마를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 전 지청장은 아직 사표를 내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정부에서 요직에 기용됐다가 한직으로 물러난 이성윤(23기)·신성식(27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 검찰은 현직 검사의 정치 행보에 대한 구설이 잇따르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각종 수사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잦아들지 않는 상황에서, 일부 구성원의 행보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심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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