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기조로 자금조달 비용이 대폭 상승했음에도 2023년 글로벌 빅파마들이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사가 보유한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는 이른바 ‘특허 절벽’으로 매출이 대폭 감소할 우려가 커지자 차세대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바이오 업체들을 적극 사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1일 서울경제신문이 지난해 11월 말 까지 이뤄진 글로벌 빅파마들의 M&A를 전수조사 한 결과, 상위 20개 거래 규모는 750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717억달러) 보다 33억달러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생한 거래 중 가장 큰 규모는 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한 화이자의 시젠(Seagen) 인수다. 화이자는 지난해 3월 항체약물접합체(ADC) 전문기업인 시젠을 430억달러(56조원)에 인수했다. 두 번째 큰 거래는 머크(MSD)가 지난해 10월 일본의 다이이찌산쿄와 ADC 3종에 대한 글로벌 개발, 상업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220억 달러(30조원)에 달한다. 머크는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후보물질에 대한 상업화 권리를 갖게 되며 일본에서 상업화 권리는 다이이찌산쿄가 유지한다.
머크는 지난해 세번째로 큰 거래도 차지했다. 앞서 머크는 지난해 4월 프로메테우스 바이오사이언스를 108억 달러(14조원)에 인수했다. 머크는 궤양성대장염과 크론병 등 신경질환 영역에서 파이프라인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치료제 ‘휴미라’를 보유한 애브비는 지난해 11월 생명공학회사 이뮤노젠을 101억달러(13조원)에 사들였다. 애브비는 이뮤노젠의 백금 저항성 난소암 치료 ADC 항암제인 엘라히어의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미 행정부가 추진 중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약가규제와 반독점 규제, 고금리 등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빅파마들이 바이오 테크 인수를 확대하는 이유는 ‘특허 절벽’에 대응하기 위해서 다양한 매출 포트폴리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2030년까지 190개의 의약품 특허가 만료될 예정인데 이 가운데 블록버스터 의약품은 69개에 달한다. 이에 따라 향후 10년간 글로벌 상위 10개 제약업체의 매출이 46%나 곤두박질 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빅파마는 화이자다. 화이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백신을 개발해 전 세계에서 현금을 쓸어 담았지만 엔데믹 이후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현지 시간) 화이자는 내년 연간 매출 가이던스를 585억달러에서 616억달러로 제시했다. 역대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던 전년 1003억 달러와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엔데믹으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판매가 줄면서 매출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화이자는 지난해 최종 매출도 올해 예상치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빅파마들이 사들인 신약 후보 물질의 키워드를 살펴보면 항암신약(ADC), 비만, 신경질환, 희귀질환 등이다. 개발에 성공할 경우 엄청난 규모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물질들이다. 국내 제약업계의 한 임원은 “제약·바이오 업계는 특허라는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신규 포트폴리오를 개발하지 않으면 곧바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며 “글로벌 빅파마와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 모두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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