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네덜란드 ASML의 심자외선(DUV) 장비의 마지막 중국 수출을 비공식 압박을 통해 틀어막는 등 대중 반도체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뚫고 자국산 7㎚(나노미터10억분의 1m) 프로세서를 스마트폰에 탑재한 후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1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DUV의 중국 수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던 ASML이 3대를 중국에 마지막으로 수출하려 했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취소했다. 블룸버그는 “미국 관리들이 ASML에 연락해 중국 고객사에 예정된 일부 장비 출하를 즉시 중단하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특히 장비 수출을 막기 위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네덜란드 정부와 접촉하는 등 백악관 최고위층이 직접 움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은 그간 7나노 이상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장비만 통제하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중국의 대표적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SMIC가 구형 DUV 장비를 통해 7나노 프로세서 제조에 성공하는 등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계속됐다. 뒤늦게 미국은 DUV 장비로 대중 수출통제를 확대했고, 이는 유예 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이미 계약된 물량까지 미국 정부가 수출을 막은 것이다.
반도체 업계는 미국이 구형인 DUV의 판매를 타국 기업에 직접적인 압박을 넣으면서까지 막아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DUV는 TSMC·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선도 기업이 사용 중인 EUV에 비해 구세대인 장비다. EUV의 파장은 13.5나노만 DUV는 193나노로 굵어 초미세공정 구현이 힘들다. 미국이 구형 장비에까지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화웨이 7나노 쇼크’가 있다. 지난해 9월 화웨이가 발표한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에는 중국 파운드리 SMIC가 DUV를 사용해 자체 제조한 7나노 공정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탑재됐다. 2020년 제재만으로 중국의 미세공정 진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미국 정계는 충격에 빠졌다. DUV로 만들 수 있는 28나노 이상 구형(레거시) 반도체 시장이 크다는 점도 제재 확대의 한 요인이다. 반도체는 온갖 전자장비에 쓰이는 만큼 반드시 고성능일 필요는 없다. 현재 수량 기준 글로벌 반도체 판매량의 75%가량이 구형 반도체이고 중국은 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구형 공정 개발까지 제지하는 한편 엔비디아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출도 막아 중국의 인공지능(AI) 개발 속도 또한 늦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가 아닌 2차전지 분야에서도 추가 제재에 나서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올해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해외우려단체(FEOC) 규정에 따라 중국산 부품과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의 세액공제 혜택을 없앴다. 이에 따라 지난해 43개이던 세액공제 대상 차종은 올해 19개로 줄었다. 최대 7500달러의 지원금이 사라지며 자동차 업계의 탈중국 배터리 행보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이처럼 반도체 장비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은 유예 기간을 활용해 ASML 장비 사재기에 나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중국의 ASML 노광장비 수입액은 37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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