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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美 대법관이 자진 회피해야 할 이유

루스 마커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심리 기피' 결코 바람직 못하지만

'부인이 대선 불복' 토머스 대법관

재판 배제 논의해야할 충분한 사유

자진 회피 안하면 사법부 오점될것





연방 대법관의 심리 기피 신청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하급법원에서는 이해 충돌 등의 이유로 판사가 특정 사건의 심리를 자진 회피할 경우 다른 동료 판사가 손쉽게 그를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연방 대법관의 숫자는 단 9명에 불과하다. 이 중 한 명이 직무 수행에서 배제되면 사건 심리 결과가 4대4로 갈라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하급법원의 판결은 그대로 유지된다.

미국 최고의 사법기관에서 다뤄지는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다. 연방 대법원의 새로운 행동 강령에 따르면 부적격 판정을 받지 않은 대법관은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며 해당 재판의 심리에 참여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니 경솔하게 대법관 기피를 요구해서는 안 되고, 대법관들 역시 들끓는 여론에 밀려 이 같은 요구를 성급히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러나 법과 상식의 선에서 대법관 스스로 옆으로 비켜서야 마땅한 상황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2021년 1월 6일 발생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관련 6개 사안이 대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문제는 토머스 대법관의 부인인 버지니아 지니 토머스가 대선 결과 불복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대법관 윤리 강령에 따라 대법관의 불공정성은 이와 관련한 모든 상황을 소상히 인지한 비편파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이 해당 대법관이 공정하게 업무 수행을 할 수 없다는 의문을 제기할 때에 한 해 논의될 수 있다.

‘비편파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트럼프 지지자들의 대선 불복 운동인 ‘도둑질을 멈추라(Stop the Steal)’ 캠페인에 지니 토머스가 적극 가담한 것이 남편의 관련 재판 배제를 논의해야 할 충분한 사유라고 말하지 않을까.

2020년 대선 직후 몇 주에 걸쳐 지니 토머스는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이었던 마크 메도스에게 “역사상 가장 큰 강도짓을 막아야 한다”는 일련의 긴급 메시지를 발송했다. 이 중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백악관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는 내용도 있다. 지니 토머스는 평소 자신의 남편을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칭한다. 지니 토머스가 메도스 비서실장에게 보낸 e메일에는 시드니 파월을 트럼프 변호인단의 선봉이자 얼굴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현재 파월은 의사당 난입 사건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범으로 기소된 상태이며 검찰 측과의 형량 거래에 따라 조지아주 불법 선거 개입 혐의에 대해 유죄를 시인했다.



지니 토머스는 변호사이자 한때 남편의 서기로 활동했던 존 이스트맨과도 e메일을 주고받았다. 이스트맨은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에게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선 승리 인증을 막을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 인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방 선거 개입 의혹에 연루됐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는 조지아주에서 선거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이쯤에서 연방 대법원이 심리하기로 결정했거나 결정할 예정인 의사당 난입 관련 6개 사례를 살펴보자. 대법원은 잭 스미스 특별검사로부터 대통령의 정치 행위가 절대적 면책특권의 대상인지 여부를 신속히 심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앞서 연방 대법원은 의회의 대선 결과 승인 절차 방해를 금지한 연방법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이 법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의사당에 난입한 폭도들과 함께 기소하는 데 적용됐다. 14차 연방수정헌법 3항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올해 대선 후보 출마 자격을 박탈한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도 트럼프 법률팀에 의해 연방 대법원에 상고될 예정이다.

물론 배우자의 정치 활동을 다른 한쪽의 배우자와 자동적으로 연결지어서는 안 된다. 지니 토머스는 워싱턴프리비콘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나와 상의하지 않으며 나 역시 내 일에 그를 끌어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을 막기 위해 지니 토머스가 벌인 치열하고도 전방위적인 싸움은 토머스 대법관 기피를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시킨다. 또 지니 토머스가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에 깊숙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남편이 이 같은 시도와 관련된 사례를 심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새로운 연방 대법관 윤리 규정에 따르면 대법관의 자진 기피는 대법원이 아니라 대법관 개개인의 결정에 달려 있다. 결국 토머스 대법관이 자신의 판관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그가 자진해서 옆으로 비켜서지 않는다면 사법부 전체의 평판은 오물을 뒤집어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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