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낮춰 재계약을 하면서도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전세가 급등할 때 임차인이 임대료 상승률 5% 이내에서 재계약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다.
8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강남구 대치동 개포우성1차 전용 84㎡는 보증금 11억 3000만 원에 전세거래가 체결됐다. 이는 기존 전세계약을 갱신한 것이었는데, 보증금을 이전 13억 8000만 원보다 2억 5000만 원이나 낮추면서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강북구 미아동 꿈의숲롯데캐슬 전용 84㎡와 꿈의숲해링턴플레이스 전용 84㎡의 임차인들 역시 보증금을 각각 기존 6억 9000만 원보다 1억 5000만 원 낮은 5억 4000만 원, 기존 6억 8000만 원보다 1억 3000만 원 낮은 5억 5000만 원으로 내리는 갱신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1년 4분기 6억 3694만 원이던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보증금은 2023년 4분기(12월 21일 기준) 5억 4926만 원까지 하락했다.
역전세 상황에서 계약 갱신청구권을 사용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2020년 7월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2법은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임대료를 5% 이내에서 증액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특히 계약갱신청구권은 1회만 사용할 수 있어 보증금을 낮출 때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남겨 뒀다가 보증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추후 보증금 인상이 막힐 것을 우려한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내주는 대신 임차인들에게 갱신청구권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5%만 인상하는 조건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계약을 갱신하거나 보증금을 인하하는 조건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도록 임차인에게 요구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임대인 입장에서는 임차인이 계약 갱신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야 이후 경기변동에 따라 임대료가 오를 때 보증금을 올려 다른 임차인을 받을 수 있다”며 “임차인 입장에서도 당장 이사하기 위해 들어가는 부대비용과 그간의 역전세 상황을 고려하면 보증금을 낮춰 계약을 갱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서라도 계약을 갱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유인이 있다. 청구권을 쓰면 임대기간 2년을 채우지 않고도 언제든지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 이때 집주인은 3개월 내로 임대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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