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6개국이 선거를 치르는 ‘슈퍼 선거의 해’를 맞아 포퓰리즘이 글로벌 경제의 최대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미국·영국 등 주요국들이 표심을 잡기 위해 과도한 선심성 경기 부양 정책을 펴서 세계경제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최근 정치적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면서 지난해 말 310조 달러로 불어난 전 세계 부채 규모를 더 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와 정치의 양극화 심화 속에 열리는 선거가 퍼주기 정책을 부추겨 정부 차입과 지출이 늘어나고 재정 규율은 느슨해진다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도 올해 각국의 선거에서 포퓰리즘과 양극화, 민주주의 악화, 지리경제학적 파편화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선심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공약집인 ‘어젠다 47’에서 연방정부 소유의 땅에 10곳의 ‘프리덤 시티(Freedom City)’를 건설해 수십만 명의 미국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의 아이디어인 신도시는 수직 이착륙 항공기, 살기 좋은 단독주택 등을 앞세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베이비붐이 다시 일도록 젊은 부부들에게 ‘베이비 보너스(baby bonus)’를 지급하고 수십억 달러를 들여 ‘아메리칸 아카데미’를 설립해 대학 교육을 공짜로 제공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처음으로 34조 달러를 넘어선 연방정부 부채를 떠안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기존 도시의 쇠퇴를 초래할 수 있는 뜬구름 잡기 공약이라는 지적이 많다.
4월 10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한국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는 매번 선거 때면 퍼주기 선심 정책으로 몸살을 앓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당 시절인 2021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가덕도신공항 건설 계획을 밀어붙였다. 당시 여야는 부산·경남 표심을 잡겠다며 가덕도신공항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특별법까지 처리했다. 민주당은 2020년 4월 21대 총선 당시에도 가구당 100만 원씩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약속해 압승을 거둔 적이 있다.
이번에도 고물가에 따른 대국민 지원책들을 쏟아내는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게 불 보듯 뻔하다. 민주당이 쌀 가격이 떨어지면 차액을 정부 예산으로 보전해주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배추·무·고추·마늘·양파까지 최저 가격을 보장해주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도 농민의 표심을 사기 위한 것이다. 민주당은 전 국민에게 최대 1000만 원을 최대 20년간 저금리로 빌려주는 기본대출 도입 방안 또한 내놓을 예정이다. 모든 국민이 금융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뚜렷한 재원 마련 대책도 없이 모럴해저드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총선을 3개월도 남겨놓지 않은 가운데 선심 정책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고 있다.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철도 건설이나 요양병원 입원 환자의 간병비 지원, 자영업자 코로나19 지원금 8000억 원 상환 면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총선 출마를 앞둔 예비 후보들은 기초연금·노인장기요양보험 대폭 인상, 지역 공공의료원 건립, 아파트 반값 관리비 등 실현 여부조차 불분명한 공약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설익은 공약들을 남발하고 있다.
눈앞의 표심 잡기에만 골몰하면 포퓰리즘 정책이 중장기적으로 초래할 부작용을 외면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5년 사이에 400조 원 넘게 급증한 국가채무는 숱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그런데도 극단적인 진영 논리와 혐오 정치에 사로잡힌 여야는 이를 덮기 위한 카드로 앞다퉈 퍼주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선심 정책에 매달리면서 시급한 구조 개혁을 외면한다면 나라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정치권은 선심 경쟁에서 벗어나 노동·연금·교육 개혁과 경제 체질 개선을 뒷받침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섣부른 ‘무상 복지’ 시리즈를 내놓기에 앞서 획기적인 출산 장려 및 청년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이 더 시급하다. 이제는 정치권이 사탕발림식 돈 뿌리기에서 벗어나 나라의 미래와 경제 살리기를 위한 정책 경쟁을 벌여야 할 때다. 유권자들부터 포퓰리즘 바람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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