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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0년째…그래도 우린 '고도'를 기다린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연일 매진

佛 희곡 원작…부조리극의 전형

'기다림' 통해 인간 실존에 물음

신구·박근형 등 원로배우 열연

4050 관객 주도로 흥행 이어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사진. 사진 제공=파크컴퍼니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그렇지 참.”

회갈색의 무대 위에는 배우들과 나이를 제법 먹은 듯한 황량한 나무 한 그루, 그리고 바윗덩이가 있다. 남루한 복장의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는 무대 위를 하염없이 맴돌면서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고도의 얼굴도 나이도 목소리도 알지 못한다. 50년의 기다림 동안 고도는 오지 않았고, 속절없이 늙어가는 시간이 존재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달 막을 올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파리에서 초연을 올린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오지 않는 고도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인간 존재의 모순을 고발하는 연극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부조리극의 전형으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1969년 극단 산울림이 한국에서 초연한 임영웅 연출작이 유명하다. 이번 작품은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시티 오브 엔젤’ 등을 만든 오경택 연출이 파크컴퍼니와 함께 새롭게 연출을 맡아 재해석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사진. 사진 제공=파크컴퍼니




극은 여백으로 가득하다. 무대 장치도 별다를 게 없고, 등장하는 인물은 배우 김리안이 연기하는 ‘소년’까지 5명이 전부다. 70년 동안 전 세계 곳곳의 무대에 오른 작품이기에 신선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연기 경력을 다 합쳐 220년에 달하는 원로 배우들의 호연이 극을 꽉 채운다.

배우 신구(87)가 단순하고 본능에 충실한 고고를, 박근형(83)이 이성적인 디디를 맡았다. 무대 위에서는 처음 만나는 조합인데도 이들이 나누는 호흡은 50년지기 친구처럼 자연스럽다. 이번 공연은 바위가 왼쪽에 놓였다. 이에 따라 동선이 변경되어 고고와 디디가 바위에 나란히 앉기도 한다. 전통적인 설정과는 다르지만, 덕분에 신구와 박근형의 유대가 더욱 빛난다. 이선형 김천대 교수(연극평론가)는 “무대 정중앙에 바위가 있던 임영웅 연출 공연과의 차이점”이라고 꼽았다. 고고와 디디는 시공간이 멈춘 무대 속 허무한 삶을 살아간다. 무슨 요일인지, 어제 누구를 만났는지도 알지 못하는 이들의 대화는 헛돌기 그지없어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그 사이에도 곱씹어 볼 지점을 남기는 것은 노배우들이 지내온 삶의 애환에서 기인한다.

배우 김학철(64)이 연기하는 부유한 지주 ‘포조’의 짐꾼 ‘럭키’는 박정자(81)가 맡았다. 여성 배우가 남성 캐릭터인 ‘럭키’를 연기하는 것은 국내 연극 사상 처음이다. 목이 끈에 묶여 속박된 삶을 살지만, 그것이 ‘운이 좋다’면서 ‘럭키’라는 이름을 갖게 된 짐꾼은 8분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독백을 거뜬하게 소화한다. 대사의 실수 없이,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엿보이는 박정자의 기백은 관객을 무대에 빨려 들게 만든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사진. 사진 제공=파크컴퍼니


극은 총 50회 공연 중 20회 공연까지 전석 매진이 이어질 만큼 반응이 뜨겁다. 관객들의 연령대가 높은 점도 특징이다. 인터파크 티켓 예매자 통계(22일 기준)에 따르면 40~50대 관객의 비중은 47.2%에 달한다. 이 교수는 “오래 전 초연된 작품이어서 인지도가 높은 데다가 원로 배우들의 출연으로 흥행 열기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고도를 기다리고 있을까. 150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다음달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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