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분야의 전문성이 서로 복합적으로 접목되는 융복합이 지금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다. 물론 융복합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일례로 산업 디자인은 공학과 예술의 융합이었고 자동차는 모든 공학을 아우르는 종합 학문으로 간주됐다. 다만 최근 정보통신기술(ICT)이 빠르게 진보하면서 사물인터넷(IoT)을 시발점으로 해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공학·사회과학을 총망라하는, 과거에 비해 한 단계 진보한 융복합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시류 탓인지 융복합 학문, 융복합 인재라는 말도 생겨났고 언제나 그렇듯이 교육 당국과 소위 교육 전문가라 자처하는 분들은 그 시류에 편승해 너 나 할 것 없이 융복합 학문과 융합형 인재가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인 것처럼 설파하고 있다. 이미 많은 대학도 교육 당국의 지원을 받아 경쟁하듯 융복합 전공이라는 것을 새로이 선보이고 있는데 좀 생뚱맞다.
융복합의 핵심은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의 협업(collaboration)이다. 원자폭탄의 탄생 과정도 결국은 수학·물리학·화학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합작품이었고 그 협업의 중심에 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 역시 물리학 최고 전문가였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두아 리파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협업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었다. 애플에서는 ‘1+1=3’이라며 두 전문가의 협업이 각자의 합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강변했다.
융복합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융복합 전공이라는 과정에서는 배출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협업에 참여하려면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데 어정쩡하게 이것저것 다 하다 보면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혹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아이작 뉴턴의 사례를 들어 융복합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융복합으로 양성된 인재가 아니라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천재들일 뿐이다. 우리 대부분은 한 분야에만 전문성을 갖춰도 대단한 일이지만 이들은 천재다 보니 여러 분야를 남보다 잘할 수 있었다.
융복합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분야별 전문가들의 협업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리더십도 필요하다. 전문 연주자들의 환상적인 협업을 이끌어낼 지휘자가 필요한 것이다. 다만 그 지휘자 본인도 최고 전문성을 가져야 하고 거기에 사회와 시장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을 어떤 방식으로 협업시켜야 시장 수요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융복합의 리더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혜안은 모든 악기를 조금씩 배운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이나 몇몇 교수의 셈법으로 고안된 융복합 교실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수많은 실전 경험과 각고의 노력으로 그런 혜안을 깨우친 사람만이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아 진정한 융복합의 리더로 거듭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에 전화기를 접목한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처음 세상에 소개했을 때 전화기라는 틀 안에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노키아와 모토롤라는 휴대폰 시장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 잡스의 혜안이 교실에서 배운 것일까.
융복합, 즉 전문가의 협업을 지휘할 리더의 출현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교육은 분야별 전문가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교육이 전문가 양성을 넘어 융복합에 좀 더 기여하고 싶다면 산학 협력이나 계약학과 등 시장 수요가 교육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흥시키면 될 것이다. 공정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며 모든 학생에게 많은 탐구과목을 강제하고 수학에서는 미적분을 배제해 어정쩡한 평균적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 융복합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일 수는 없다. 최상위권 대학에서 융복합 과정을 졸업한 입사 지원자를 면담한 국내 유수 기업의 CEO는 그 지원자를 이렇게 평했다. “이것저것 모르는 것이 없어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면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요.” 이것이 우리 융복합 전공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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