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홀로서기’가 아닌 ‘용산과의 화해’에 주력한 것은 “당의 힘만으로는 총선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선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상황에서 ‘당정 갈등’이 이어질 경우 자신의 정치 자산이 소진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총선 승리’라는 목표하에 윤석열 대통령과의 화해 무드 조성을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위원장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사퇴 이후 당을 구할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김경율 사천 논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 등에 대한 대응 문제로 거취 압박에 내몰렸다. 표면적으로는 절차적인 문제를 야기해 ‘총선 악재’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이유이나 그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불만이 깔려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두 사람의 사이는 일반적인 ‘당정 수장’의 관계를 넘어선다. 이들은 검찰에서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며 막역한 신뢰감을 형성했다.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가리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배였다”고 언급한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한 위원장으로서도 윤 대통령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핵심 측근인 만큼 자신이 먼저 나서지 않고서는 양측 간 ‘감정의 골’을 메울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 위원장이 ‘정치적 홀로서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으나 용산의 도움 없이 선거를 치르기에는 당내 사정이 녹록지 않다. 한 위원장이 명목상 당의 수장을 맡고 있지만 정치 경험이 이제 한 달을 넘은 상황에서 당에 완벽히 착근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내에서는 여전히 ‘친윤(친윤석열)’ 의원들이 주류를 형성해 한 위원장을 노골적으로 흔들 태세를 갖추고 있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비대위원장이 의원들의 공천권을 쥐고 있다 한들 친윤 주류들은 현실적으로 용산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도 “대통령이 함께하지 않는 한 집권당에서 독자적인 선거는 있을 수 없다”며 “결국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 스스로의 정치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갈등 국면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당초 당내 하태경·이용호 의원 등은 앞서 한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자 “대선 주자 한동훈이라는 이미지를 조기에 소진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제기한 바 있다. 총선에 패배할 시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이날 서울역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민생을 챙기고 국민과 이 나라를 잘되게 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4월 10일에 국민의 선택을 받고 이 나라와 우리 국민을 더 잘살게 하는 길을 가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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