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가 결혼 생활 동안 아내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정황이 드러났다.
23일 공개된 현모씨의 공소장에 따르면 현씨는 아내에게 "너 같은 여자는 서울역 가면 널려 있다"는 등의 비하 발언을 10년 전부터 해왔다.
현씨는 2018년 아내와 협의 없이 아들·딸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이때부터 수년간 떨어져 살게 되자 현씨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했다. 2019년 "불륜 들켰을 때 감추는 대처법을 읽었는데 너의 대응이 흡사하다"며 "성병 검사 결과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영상통화로 현관에 있는 신발을 보여 달라고 하거나 3개월간의 통화 내역을 보며 '누구와 왜 통화했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등 의처증 증상을 보였다.
급기야 현씨는 자녀들에게 아내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엄마가 자기 밖에 몰라서 따로 살게 된 것이고 너희를 사랑하지 않아서 일만 하는 것”이라고 자녀들에게 언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딸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영어로 욕설을 하도록 시키거나 아들의 “어디서 또 나쁜 짓 하려고 그래”라는 음성을 녹음해 아내에게 전송하기도 했다.
이런 모독적인 대우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결국 2021년 10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현씨가 “엄마의 자격·역할과 관련해 비난·질책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의처증으로 오해할 만한 언행이나 상간남이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각서를 쓰자 한 달 만에 소송을 취하했다.
그럼에도 각서 내용은 지켜지지 않았고 괴롭힘은 지속됐다. 현씨는 아내 직장으로 수차례 전화해 행적을 수소문하고 험담을 이어갔다. 지난해 초 가족 모두 뉴질랜드로 여행을 갔는데 초행지에 아내만 남겨둔 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가 하면 추석에는 아내와 상의 없이 자녀만 데리고 홍콩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현씨는 지난해 11월13일 아내가 딸과 별거를 시작한 거처에 찾아가 소란을 피우다 경찰로부터 퇴거 조치를 받았다. 당시 현씨는 딸에게 “가난한 아내의 집에 있으면 루저(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장모에게는 “이혼을 조장하지 말고 딸에게 참는 법을 가르쳤어야지”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 아내는 두 번째 이혼소송을 냈으나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3일 숨지면서 소송이 종결됐다.
현씨는 지난달 3일 오후 7시50분께 서울 종로구 사직동 자택에서 아내와 말다툼 끝에 주먹과 쇠파이프로 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지난달 29일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당일 현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딸이 두고 간 책가방을 가지러 오라”며 자기 집으로 오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1부(부장판사 허경무) 심리로 진행된 첫 공판에서 A씨 변호인은 “공소사실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2차 공판은 다음 달 28일 진행된다.
한편 현씨는 미국 변호사 신분으로 국내 대형 로펌에 재직하다 사건 발생 후 퇴사했다. 현씨 측은 로펌 3곳을 선임한 상태며 그의 부친은 검사 출신 5선 국회의원으로 알려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