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을 가정하자. 100명의 남녀 청년이 있다. 25개의 좋은 일자리와 25개의 보통 일자리가 있다. 남자가 대부분의 일자리를 독식하고 50쌍의 부부가 생겨 사회가 돌아갔다.
2024년. 여권은 신장됐다. 50개의 일자리는 능력녀와 능력남이 나눠 가진다. 아버지 세대와 비교해 젊은 남자들은 직업이 불안정해졌다. 좋은 일자리는 사회경제적 상류층이 차지한다. 소득 격차는 더 늘었다. 50쌍보다 적은 부부가 생길 것은 당연하다.
온라인 모바일 환경은 비교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들의 화려한 생활을 모두에게 실시간으로 전파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쓴 것처럼 자유주의·능력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내가 못난 것은 내 탓”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청소년의 우울감과 자살률을 높였다는 것은 철 지난 이야기다.
정체성 정치의 1번 페미니즘도 가세한다. ‘1982년생 김지영’은 한 여성에게 일어나면 안되는 일들의 종합 선물 세트다. 극단적이지만 피해자 서사의 좋은 재료다. 당했으니 갚아야 하고, 당했으니 받아야 한다며 생겨나는 여성 할당과 독박 병역은 이대남 현상의 근원이다.
1982년생 김지영의 가장 큰 해악은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여성들에게 널리 전파한 것이다. 데칼코마니가 소위 ‘퐁퐁남-설거지론’이다. 이제는 젊은 남성들도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대남의 공정론은 예전이라면 좋은 직장을 가졌을 남자들, ‘퐁퐁남-설거지론’은 지금은 제대로 된 직장도 없는 남성들이 만들어 내는 고통의 절규이자 여우의 신포도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패자는 직장도 없는 여성들이다. 결혼을 하기도 싫고, 할 수도 없다. 자살 증가율이 가장 높고 가장 취약해 보호해야 그룹이다. 극렬 페미니즘은 젊은 남성들의 책임감을 일정 부문 앗아갔고 그들은 더 이상 결혼으로 호구 짓을 하지 않으려 한다.
문제는 젊은 남녀의 갈등의 원인이 표피적인 계급이나 페미니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의 20대는 남녀 불문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똑똑한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엉뚱한 이유로 다투는 것은 에너지를 맘껏 분출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와 성장의 기회를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젊은 청년 남녀들이 연대하기를 원한다. 계급 타령, 젠더 갈등으로 분열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성세대와 싸우고 요구하기 바란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라. 경제를 성장시켜라. 미친 집값을 잡아라. 우리에게도 자산 형성의 기회를 달라. 세금 좀 깎아라. 애 좀 낳아 키우기 좋게 만들어라.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좀 손봐라. 지속 가능한 환경 문제에도 좀 신경 써라. 청년 남녀가 싸울 일이 아니다. 힘을 합쳐서 자기밖에 모르는 기성세대들에게 당신들이 편하게 산 세상만큼 우리도 좀 먹고 살게 해달라고 짱돌을 던지시라. 선거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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