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서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지만 표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 법안 처리에서는 의기투합하고 손을 잡는다. 국회는 25일 본회의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최소 6조 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대구~광주 달빛철도 건설 특별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동서 화합, 지방 발전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여야 의원 261명이 공동 발의했다. 달빛철도는 비용 대비 편익이 절반도 안 돼 벌써부터 ‘돈 먹는 하마’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야는 9일 수도권 전철 지하화(사업비 최소 40조 원)를 위한 특별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서울지하철 5호선 연장(3조 원), 수원 군공항 이전(20조 원) 등도 추진하고 있다. 모두 예타 면제로 인해 재정 건전성을 무너뜨리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사업들이다.
우리 정치권은 표밭 관리를 위해서는 야합하면서도 경제·민생 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미룬다. 여야 합의가 불발되는 바람에 이달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된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음식점·빵집·카페를 포함한 83만여 개의 영세업체 대표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을 겪게 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 법안 처리를 호소했으나 국회는 이를 외면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줄도산과 근로자 대량 해고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업안전보건청 신설 등 무리한 요구를 협상 막판에 들고 나와 당초부터 유예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다음 달 1일까지 논의 창구를 열어두겠다면서도 당장 법 시행으로 예상되는 현장 혼란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국회는 말로만 ‘민생’과 ‘경제’를 외치지 말고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국회는 중처법이 전면 시행된 뒤라도 처벌 규정이 과도하고 애매모호해 산재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법안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또 한국수출입은행의 정책 금융 한도를 늘리지 못해 ‘K방산’ 수출길이 막힌 만큼 ‘수은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또 ‘고준위방폐물관리 특별법’과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완화 법안 처리도 더 늦추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본연의 입법 책무를 방기하고 총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것은 직무유기이므로 선거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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