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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순수 국내기술 '남산지기 40년'…'서울 힐튼'을 기억하는 법

◆힐튼이 말하다

김종성 외 지음, 램프북스 펴냄





서울 힐튼. 연합뉴스


한 건축물이 세워지기까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소들이 고려된다. 거대한 자본과 노동, 시간, 건축가, 인테리어 전문가 등도 투입된다. 시간이 흘러 건축물의 쓰임새가 사라지면 경제적 이유로 건축물은 허물어진다. 대표적인 게 바로 서울 힐튼이다.

신간 ‘힐튼이 말하다’는 남산 인근에 40여 년 간 자리잡고 운영했던 서울 힐튼 건물을 다룬다. 서울 힐튼은 2022년 12월 31일 영업 종료됐다. 현재는 처분만 기다리며 덩그러니 건물만 남아 있다.

저자는 힐튼이 건축사적, 사회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공간이었는지 조명한다. 서울 힐튼은 1983년 최고의 비즈니스호텔을 표방하며 개관했다. 당시 호텔은 한국을 찾는 해외 바이어들이 필수로 묵는 곳으로 손꼽혔다. 시설의 편의성, 우수성뿐만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컸다.

당시 특급호텔의 대부분이 일본인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것과 달리 서울 힐튼은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에서 시공까지 순수 국내 기술로 건축됐다. 김종성 건축가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표준을 만들어낸 미스 반 데 로에의 제자다. 서울 힐튼이 개관 2년 만에 서울시 건축상 금상을 받은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호텔은 공간으로 활용됐다. 호텔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시기 공식 방송사인 NBC방송 본부가 됐고 1992년에는 찰스 영국 황태자 내외의 공식 방한을 기념하는 ‘브리튼 포 코리아’ 행사를 치렀다. 시민 개개인에게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추억의 장소다.

서울 힐튼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한 건 대우그룹이 와해되면서다. 대우개발 소속이었던 서울 힐튼은 대우그룹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1999년 싱가포르계 투자 전문 회사인 씨디엘호텔코리아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2021년에는 국내 부동산투자사 이지스자산운용에 1조 1000억 원에 매각됐다. 이에 따라 서울 힐튼은 2022년 12월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문을 닫았다.

저자는 서울 힐튼에 담긴 건축사적, 사회적 의미 등을 고려할 때 공간이 사라지는 데 아쉬움이 크다고 말한다.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무조건 철거하고 새로 지어 올리려고만 한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건축물은 한번 부숴버리면 그에 담긴 역사도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서울시가 서울 힐튼의 로비 바닥, 기둥 등 일부를 남겨 건축사적 가치를 보존하겠다고 했지만 저자가 반대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대신 저자는 책을 통해 서울 힐튼의 유산을 남기고자 한다. 책은 서울 힐튼의 공사 과정을 다룬 사진들과 각종 도면을 담았다. 김종성 건축가의 의견과 다른 건축가, 전문가들의 의견도 포함했다.

저자는 “서울 힐튼은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한 모더니스트 건축가의 작품인 동시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초석을 닦은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라며 “무조건 부수고 개발하기에 앞서 건축물이 건축사에, 우리 사회에, 서울이라는 도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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